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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동아시아공동체 꾸려 다자교류 해야 한반도 위기 해결”

등록 2013-05-15 19:32수정 2013-05-16 09:24

지난달 일본 교토 도심의 연구실에서 만난 요한 갈퉁 교수.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유럽과 일본 등 세계를 돌며 평화학 연구를 계속중인 이 노학자는 “나에겐 연구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재봉 교수 제공
지난달 일본 교토 도심의 연구실에서 만난 요한 갈퉁 교수.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유럽과 일본 등 세계를 돌며 평화학 연구를 계속중인 이 노학자는 “나에겐 연구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재봉 교수 제공
[창간기획] 전쟁과 평화 (하)
‘평화학 창시자’ 갈퉁 교수 제자 이재봉 교수 좌담
지금 한반도 정세는 21세기 들어 가장 긴박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미국의 무력 동원과 한-미 공동군사훈련, 개성공단의 사실상 폐쇄 등 남북관계는 근래 최악의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분단과 냉전, 전쟁 위기의 족쇄를 풀지 못하는 암울한 한반도 현실에서 진정한 남북 화해와 평화의 해법은 무엇일까. 남북한 사람들이 갈등 해소를 위해 본질적으로 성찰해야 할 요점들은 무엇일까. <한겨레>는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평화의 해법과 지혜를 찾아보고자 평화학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요한 갈퉁(83)과의 대담을 창간 25돌 특집으로 마련했다. 그의 제자인 이재봉 원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평화연구소 소장)가 지난달 28~29일 갈퉁이 머물고 있는 일본 교토로 날아가 한반도 갈등과 평화 해법에 대해 여러 이야기들을 나눴다.

남·북·미·중·일·러·대만·홍콩 등
다자간 협상으로 재화 주고받는
국제적 친선관계 만들어가야

북한은 언어·물리적 위협 중단을
미-중 수교 이끈 ‘핑퐁외교’ 처럼
예술·스포츠 교류로 교착 풀수있어

이재봉(이하 이) 요즘 한반도에 갈등과 긴장이 높아지면서 전쟁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여기저기서 남북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받는다. 한반도 문제에 큰 관심을 가져온 외국인 전문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요한 갈퉁(이하 갈퉁) 북한이 위협하듯 핵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 전쟁이 일어나면 북한이 어떻게 될지 누구보다 북한이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소규모 무력충돌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이른바 ‘북핵 문제’가 제기된 지 20년이 지났다. 양자회담, 3자회담, 4자회담, 6자회담 등 다양한 형태의 회담이 여러 차례 열렸지만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최근 한반도 상황을 분석, 평가하면서 갈등과 긴장의 근원적 배경이나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짚어 봤으면 한다.

갈퉁 한국전쟁 이후 상황이 이렇게 악화한 적이 없다. 핵전쟁 공포를 낳았던 1962년 10월의 쿠바 위기가 떠오른다. 쿠바처럼 북한도 한국전쟁 이후 60년 동안 미국으로부터 평화조약과 국교 정상화를 거부당하며 봉쇄와 제재를 받아 왔다. 미국과 남한이 북한에 근접해서 벌이는 연례적 군사훈련에 따라 군사적 압박도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소련(러시아)과 중국은 남한을 인정했지만, 미국과 일본은 아직도 북한을 인정하지 않은 채 남한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소련군과 중국군은 북한을 떠난 지 오래됐지만, 미군은 중국을 견제, 포위하기 위해 아직 남한에 머물러 있다. 가까운 미래에 철수할 계획도 물론 없다. 미국은 독립전쟁 이후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한국전쟁에서 이기지 못해 북한에 대한 본능적 증오를 지니고 있다. 특히 1989~1990년 동독이 붕괴되고 서독에 흡수된 뒤부터 남한과 함께 북한의 붕괴를 추구해 왔다. 미국 강경파들은 대북 적대관계를 유지하면서 보복전쟁을 일으키고 이번에는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듯하다. 한반도 위기는 5개국이 연루되어 있다. 미국+일본 및 미국+남한 동맹이 암묵적인 중국+북한 동맹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미국은 북한을 중국에서 떼어놓으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한편 세계 제1의 경제대국 자리를 놓고 중국과 경쟁하며 중국을 배제한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집권 강경파가 최근 위기를 일본이 정규 군대를 보유하는 ‘보통국가’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 1910년(한일병합)-1931년(만주사변)-1945년(중일전쟁, 태평양전쟁)에 걸친 일본의 죄를 인정하고 남북한 및 중국과 화해하려던 과거의 시도조차 물거품으로 만들며, 전쟁 권한을 박탈한 헌법 9조를 제거하려 하는 것이다. 이렇듯 한반도 위기는 미국의 적대적 대북 정책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동아시아 전체의 갈등과 긴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면 한반도 위기를 해결하며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갈퉁 우선 북한이 언어로든 물리적으로든 각종 위협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동아시아 국가들이 다자간 협상으로 재화를 직접 주고받는 국제적 친선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중국, 대만, 홍콩과 마카오, 일본, 한반도, 몽골, 극동러시아를 포함하는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중국과 북한도 포함하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과 연계하여 미국 및 다른 태평양 국가들도 동등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모든 나라가 상호 간에 동등한 혜택을 누리며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위협은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여 궁극적으로 국교를 정상화하고 평화협정을 맺는 데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와 관련하여 선생이 강조해온 것 가운데 하나는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수단이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언어폭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갈퉁 국교 정상화나 평화협정이라는 북한의 목표는 훌륭하다. 그러나 수단에서는 좋은 점이 적고 나쁜 점이 많았다. 특히 소통하는 방법이 좋지 않다. 목표는 고수하되 수단은 바꿔야 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얼마든지 평화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그런데 평화적 해결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창의성과 인내력이다.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평화적 접근 방법은?

갈퉁 약 5년 전 뉴욕 필하모닉 악단이 평양에서 공연했다. 아마 ‘필하모닉’이란 이름 때문에 북한이 초청했는지 모른다(‘필’은 사랑을 뜻하고, ‘하모닉’은 조화를 의미한다). 1971년엔 미국 탁구팀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는데, 이 핑퐁 외교가 미-중 국교 정상화로 이어졌다. 어려운 정치·군사 문제를 예술·스포츠 교류로 풀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뉴욕에 현대미술관(MOMA: Museum of Modern Art)이 있는데 북한이 여기의 소장품들을 평양에서 전시한다면 미국은 북한이 자국의 문화를 찬양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학문적으로 서울대와 김일성대, 그리고 예일대나 컬럼비아대(하버드대나 스탠퍼드대는 조금 폐쇄적인 경향이 있으니까)가 합동 세미나 등을 해보는 것도 남한-북한-미국 사이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푸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1970년대부터 남북한 평화통일 조언

갈퉁 교수는

‘적극적 평화론’ 평화연구 이정표
남북철도 연결 주장도 펼쳐

요한 갈퉁 교수는 현대 평화학의 창시자로 추앙받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1930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나 오슬로대에서 수학한 뒤 오슬로대·베를린대 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세계 곳곳을 돌며 연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평화와 관련된 주제로 150권 이상의 책과 1500편 이상의 논문을 썼으며, 130여권은 33개 국어로 번역됐다.

그는 1959년 오슬로에 국제평화연구소(PRIO)를 설립하고, 1964년 <평화연구저널>을 창간했으며, 세계평화학회(IPRA)도 주도적으로 창립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지의 대학을 순회강의하다 1993년 트랜센드(TRANSCEND: 평화, 발전, 환경 네트워크)를 세웠으며 2003년엔 트랜센드 평화대학(TPU)을 설립했다. 전쟁 없는 ‘소극적 평화’에 머물지 않고 폭력이 사회에 만연하는 ‘구조적 폭력’의 극복과 지양을 강조하는 그의 ‘적극적 평화’론은 평화학 연구에 이정표를 세운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그는 1970년대부터 한국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에 깊은 관심을 갖고 조언해 왔다. 박정희 군사독재를 공개 비판하며 당시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했으며, 96년 방한 당시엔 이른바 ‘강릉 잠수함 사건’이 터져 남북관계가 악화하는 모습도 직접 지켜보았다.

그는 정치인들보다 학자들이 남북갈등 해결에 앞장서는 게 바람직하다며 황장엽 등 북쪽 학자 2명과 남쪽 학자 2명을 스웨덴 스톡홀름평화연구소에 초청하는 대담을 주선하기도 했다. 97년 황장엽이 망명해 이 자리는 무산됐지만, 98년 국가정보원 안가에서 황장엽과 만나 대담한 바 있다.

갈퉁 교수는 부인의 모국 일본에서 노르웨이까지 기차를 타고 여행해보는 게 소원이라며 남북 사이에 철도가 연결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펼쳐 왔다.

요한 갈퉁 교수는 한반도 위기가 북한에 증오감을 지닌 미국의 적대적 대북 정책에서 비롯되었으며, 이것이 동아시아 전체의 갈등과 긴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11일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부두에 입항한 미국의 핵 항공모함 니미츠호의 모습.
 김봉규 기자 <A href="mailto:bong9@hani.co.kr">bong9@hani.co.kr</A>
요한 갈퉁 교수는 한반도 위기가 북한에 증오감을 지닌 미국의 적대적 대북 정책에서 비롯되었으며, 이것이 동아시아 전체의 갈등과 긴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11일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부두에 입항한 미국의 핵 항공모함 니미츠호의 모습.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서울대-김일성대-예일대 합동세미나 등 통해 갈등 풀수도”

북-미 두나라 합의만 하면 되는
국교정상화 먼저 이뤄져야
한-미, 북-중 군사동맹 해체를

일, 주변국 불안케 하는 TPP 대신
중국 등과 평등한 동반자 관계를
영토분쟁은 공동관리로 해결해야

미국이 응하지 않는다면?

갈퉁 인내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요즘 개성공단이 (영구)폐쇄될 위기에 놓여 있다. 어떻게 파국을 피할 수 있겠는가?

갈퉁 남과 북은 먼저 해결 방안을 추구하며 협상해야 한다. 자신은 옳은데 상대가 잘못됐다든지 자신도 나쁘지만 상대는 더 나쁘다는 생각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격퇴하려는 것은 전통적 방법이다. 상대를 비난하지 말고 상대가 대화와 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선생은 약 한 달간 일본에 머물러 왔다. 요즘 아베 총리가 과거 침략을 부정하며 역사 왜곡을 저지르고 관료들은 대거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등 우경화로 치닫고 있다.

갈퉁 아베 내각은 초기부터 강력한 대외정책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평화헌법을 고치고, 역사를 다시 쓰며, 젊은이들이 일본의 과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애국심을 고취하는 교육을 시키는 게 우선 목표다.

일본 국민의 지지가 높다.

갈퉁 맞다. 지금까지 70%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 아베 내각이 펴고 있는 ‘아베노믹스 ’(Abenomics)라는 이름의 강력한 경제성장 정책이 문제가 될 것이다. 일본은 미국이 주도하는 초자본주의적(hyper-capitalist)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에 합류하려 한다. 중국과 북한에 대해 일본 안보의 수호자인 미국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다. 일본이 이 협정에 합류하면 ‘일본의 미국화’가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고용 보장 없이 고용과 해고가 반복되고, 미국이 통제하는 회사가 늘며, 국내산 쌀, 밀, 쇠고기 등이 살아남지 못한 채 미국 제품이 어느 때보다 많이 수입될 것이다. 결국 미국의 왕성한 이익 추구에 일본의 모든 게 희생되리라 생각한다. 덧붙여 일본의 식량 자급률이 매우 낮다. 1973년엔 73%였지만 지금은 39%에 불과하다. 미국은 128%, 오스트레일리아(호주)는 237%, 영국은 73%를 기록하고 있는데, 식량의 60% 이상을 수입해야 한다. 이 때문에 식품 가격이 곧 오를 것이며 임금이 오르기 전 가계에 타격을 줄 것이다. 아베 정권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일본은 동아시아의 불안을 조성하는 이 협정에 합류하는 대신 이웃국가들에 합류하면서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을 고쳐 중국을 포함한 관련 국가들이 평등한 동반자 관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센카쿠 또는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 사이의 영토 분쟁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갈퉁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문제다. 특히 섬 국유화를 추진하는 등 일본의 강경한 입장이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미국도 일본에 경고를 보냈지만 따르지 않고 있다. 일본과 중국의 공동 소유 또는 공동 관리로 해결할 수 있다. 그 섬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이나 수입을 두 나라가 5 대 5로 나누어 갖거나, 앞서 얘기한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어 이로 하여금 그 섬을 관리·감독하도록 하고 일본과 중국 그리고 동아시아공동체가 수입을 4 대 4 대 2로 나누어 가질 수 있다. 아베 정권에서는 어려울 것 같고 다음 정권에서 협상을 시작하거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한반도 위기가 동아시아 위기라고 했지만, 핵심은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다. 그런데 이는 주한미군 때문에 실현되기 어렵다. 미국은 북한 핵무기 자체보다 핵물질이나 핵기술이 이란이나 알카에다 등 테러세력들한테 전파되거나 확산되는 것에 더욱 신경을 쓴다. 한편으론 남북이 통일되더라도 중국을 견제하고 포위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철수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북한이 줄기차게 평화협정을 주장해도 미국과 남한에서는 정전협정을 고수해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주한미군 때문 아니겠는가. 평화협정을 맺으면 주한미군을 유지할 명분이 약해지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중국을 포위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중국을 견제하고 포위하기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하고, 주한미군을 유지하려면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갈퉁 전적으로 동의한다. 여기서 북-미 국교 정상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는 오직 두 나라만 합의하면 된다. 평화협정은 국교 정상화보다 범위가 넓다. 적어도 남한과 중국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 중립화는 비동맹보다 범위가 넓고 어려운데, 중립화가 어렵다면 비동맹으로도 충분하다. 남한과 미국, 북한과 중국이 군사동맹을 해체하면 족하다는 뜻이다.

선생은 ‘현대 평화학의 창시자 또는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특히 선생이 창안한 ‘구조적 폭력’과 ‘적극적 평화’라는 말은 일반인들도 널리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두 용어는 개념이 너무 넓고 다소 애매한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갈퉁 ‘구조적 폭력’이나 ‘적극적 평화’는 나의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다. 당연히 이에 동의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 글을 얼마나 읽고 그런 비판을 하는지 의문이다.

지금까지 약 150권의 책을 펴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갈퉁 작년엔 <평화경제학>, <평화수학> 등을 펴냈다. 올해는 중재, 화해 등에 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나에겐 은퇴가 없다. ‘은퇴’(retire)라는 말은 ‘다시’(re) ‘피곤하다’(tire)는 말인데 난 결코 피곤해하지 않는다. 나에겐 연구만 있을 뿐이다. ‘연구’(research)라는 말은 ‘다시’(re) ‘찾는다’(search)는 뜻인데 난 계속 찾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피곤해하지 않으며 계속 찾는 게 앞으로의 계획이다.

은퇴와 연구에 대한 선생의 조작적 정의가 재미있다. 좁게는 한겨레신문 독자들, 넓게는 한국인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갈퉁 한겨레신문 창간 배경과 정신에 대해 조금 안다. 창간 2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독자들이 한겨레신문에 긍지를 갖고 더 지지해서 더 발전할 수도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해온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을 연구하면서 아무리 큰 충격(trauma)이라도 40년이 지나면 치유된다고 주장해 왔는데,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지났는데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빨리 충격에서 벗어나 화해로, 갈등에서 조화로 나아가게 되길 희망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까 말했듯 남과 북이 해결 방안을 추구하며 협상을 해야지, 자신만 옳다는 생각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 해서는 화해와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출국 준비에 바쁠 텐데 오랜 시간 대담에 응해줘 고맙다.

정리 이재봉 교수

여든 넘기고도 일벌레…“평화는 평화적으로 성취해야”

좌담 후기

갈퉁 교수를 만나러 교토로 향한 건 지난달 27일이었다. 현대 평화학을 창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갈퉁 교수는 4월 내내 교토에 머무르다가 4월30일 프랑스로 떠날 참이었다. 그는 노르웨이 출신이지만 매년 7~8월 중 2주쯤 고국에서 휴가를 즐기는 것 외엔, 12~2월엔 스페인, 3월엔 미국, 4월엔 일본, 5~6월엔 프랑스, 7~9월엔 스페인, 10~11월엔 미국에 머무르며 강연과 연구를 해 왔다.

갈퉁 교수는 나이 여든을 넘겼지만 아직도 매우 건강한 ‘일벌레’였다. 필자가 교토에 머물렀던 27~29일 주말은 쇼와 전 일왕의 생일이 덧붙여지는 ‘골든 위크’라는 긴 연휴 기간이었지만, 그는 27일 도쿄에서 강연을 하고 28일 교토로 돌아와 워크숍을 열 정도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교토 도심 주택가의 한적한 연구실에서 반소매셔츠 차림으로 만난 갈퉁 교수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깊은 생각들을 쉼없이 털어놓았다. 그것은 평화는 어떠한 경우에도 평화적 수단으로 성취해야 한다는 뜻을 담은 내 은사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이재봉 원광대 교수


하와이대학서 갈퉁 교수에게 평화학 배워

이재봉 교수는

이재봉 교수(사진)는 1991~1994년 하와이대학에서 요한 갈퉁 교수에게 평화학을 배우며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원광대에서 정치학과 평화학을 강의하면서 현재 이 대학의 평화연구소와 한중정치외교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2000년 갈퉁 교수의 책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번역 출판했으며, 2011년엔 갈퉁 교수와 공동으로 <한국: 통일로 가는 험난한 길>(Korea: The Twisting Roads to Unification)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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