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한국사회 불평등, 시한폭탄 닮았다”

등록 2013-04-30 19:53

최근 <한국 사회 불평등 연구>를 펴낸 신광영 교수가 29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 연구실에서 한국 사회 불평등 심화 현상과 그 해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최근 <한국 사회 불평등 연구>를 펴낸 신광영 교수가 29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 연구실에서 한국 사회 불평등 심화 현상과 그 해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네번째 ‘불평등 연구서’ 낸 신광영 교수
외환위기 뒤 불평등 심화 가속
상위10% 소득이 하위10%의 10배
88만원 세대 담론은 본질 간과
계층·계급간 불평등 더 큰 문제

일자리와 복지정책 획기적 전환
사회해체 수순 이른 흐름 막아야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속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릅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국내 불평등 연구의 대표 학자라고 할 수 있는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29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의 불평등 정도가 사회 해체 수준에 이르고 있다”며 “일자리정책, 복지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해서 이 추세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이번주 우리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비정규직 문제, 노령화, ‘88만원 세대’ 담론, 성차별, 맞벌이가구 증가 등 여러 각도에서 다룬 <한국 사회 불평등 연구>(후마니타스)를 펴냈다. 1994년 <계급과 노동운동의 사회학>을 시작으로 <동아시아의 산업화와 민주화>(1999),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2004)에 이은 네번째 불평등 연구서다.

신 교수는 이 책에서 19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폭발적 성장 덕에 노동자들의 임금이 크게 오르면서 1990년대 중반까지 임금소득 격차가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불평등 약화 추세는 불평등 심화 추세로 전환됐다. 1996년 0.295까지 내려갔던 지니계수(수치가 높을수록 불평등)가 2012년 0.352까지 다시 올라갔고, 상위 10%의 평균 소득은 하위 10%의 10배까지 늘어났다.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각종 사회불안정 현상이 함께 나타났다. 상대적 빈곤율(소득이 중간수준 소득의 절반 미만인 가구 비율)이 16.5%(2012년 기준)까지 증가했고, 범죄율(강력범죄)은 1997년 이후 4배 급증했다. 전체 자살률, 노인자살률, 이혼율 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신 교수는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가 변해가는 양상은 너무도 극단적이어서, 마치 실험실에서 뭔가 충격을 가하고 이에 따른 결과를 지켜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라고 말했다.

불평등 심화 현상의 중심에는 노동문제가 놓여 있다. 기업들이 일자리를 국외로 옮기고, 인건비 절감을 위해 구조조정을 상시화하면서 비정규직 비율(2009년 기준 노동계 통계 52%, 정부 통계 35%)이 오이시디 1위 수준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40~50대가 직장에서 조기 퇴직당하면서 영세 자영업자가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30%에 이를 정도가 됐고, 그 소득도 비정규직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근속연수는 평균 5.0년(2010년)으로 유럽의 절반 수준이고, 고용이 불안정한 미국(5.1년)보다도 짧다.

최근 기업들이 60살 정년 연장 법안에 반대하고 나선 데 대해 신 교수는 “기업들이 단기 비용만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전체 국민을 생각해야 하는 국가가 기업들의 요구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소위 ‘세대 간 일자리 전쟁’ 논란과 관련해서도 “정년퇴직하는 베이비부머 수보다 새로 노동시장에 들어오는 청년들 수가 적기 때문에, 기업들이 현재 수준의 고용을 유지하는 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소위 세대 간 불평등을 강조하는 88만원 세대 담론에 대해서도 자칫 본질을 간과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고소득층 가구는 아버지도 잘나가고 자신도 취업이 더 잘되는 반면, 중산층·저소득층 가구는 아버지는 직장에서 잘리고, 자녀는 취업을 못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세트’로 고용위기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세대 간 불평등보다 계층·계급 간 불평등이 훨씬 큰 문제라는 것이다.

신 교수가 최근 더 주목하고 있는 문제는 인구구성과 가족구조의 변화가 불평등을 더 심화시키는 부분이다. 대표적인 문제가 고령화다. 소득이 적거나 거의 없는 노령인구가 증가하면서 노인빈곤율(45.1%, 2009년 기준)이 치솟고, 이혼율의 급증으로 여성 가장 가구가 증가하면서 이 중 70%가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맞벌이 증가도 과거와 달리 불평등을 키우는 쪽으로 작동하고 있다. 신 교수는 “여성 일자리가 고소득 전문직과 저소득 일자리로 양극화되고 있는데다, 교육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하는 ‘동질혼’ 비율이 높아지면서, 남편의 소득이 높을수록 부인의 소득도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그 결과 남편과 아내의 소득을 합친 가구소득 불평등이 더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적 불평등이 증가하면 빈곤, 범죄, 자살 등 사회 불안 요인이 늘어나게 되고, 저소득층이 소비를 못하는 바람에 내수경제도 위축된다. 소득 불평등이 ‘건강 불평등’으로 이어져 사회가 지불해야 할 의료비용도 증가하게 된다. 신 교수는 “요즘은 ‘인명재천’이 아니라 ‘인명은 계급에 달렸다’고 말해야 할 정도”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지금처럼 소수만 혜택을 누리는 발전은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이런 인식을 바탕 삼아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비정규직 축소, 복지 강화, 증세 등의 정책을 전면적으로 추진해나가야만 현재의 불평등 추세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이 선거기간에만 반짝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외치다 슬그머니 태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뇌관이 제거된 것이 아닙니다. 심각한 불평등으로 인한 국민들의 불만과 요구는 언제든지 다시 폭발할 수 있습니다. 원래 복지는 경제가 좋을 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이나 유럽 모두 경제가 위기일 때, 국민들이 정말 어려울 때 복지를 확대했습니다.” 신 교수의 ‘근시안적인’ 정치권에 대한 경고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25년 경호 공무원의 조언 “대통령 ‘개인’ 아닌 ‘공인’ 지키는 것” 1.

25년 경호 공무원의 조언 “대통령 ‘개인’ 아닌 ‘공인’ 지키는 것”

영화인들 “‘내란 공범’ 유인촌의 영진위 위원 선임 철회하라” 2.

영화인들 “‘내란 공범’ 유인촌의 영진위 위원 선임 철회하라

63살 데미 무어의 세월을 질투하다 3.

63살 데미 무어의 세월을 질투하다

지난해 가장 많이 들은 ‘팝’ 2위가 뉴진스 슈퍼내추럴이라고? 4.

지난해 가장 많이 들은 ‘팝’ 2위가 뉴진스 슈퍼내추럴이라고?

밴드 인기 끌더니…록 음악 스트리밍도 껑충 5.

밴드 인기 끌더니…록 음악 스트리밍도 껑충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