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공선옥
새 장편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폭력에 무너지는 약자들 삶 비춰
‘마술적 사실주의’ 같은 언어 표현
주제의 반복보다 ‘변주’ 느낌 강해 공선옥의 새 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창비)는 1980년 5월 광주를 중심에 놓고 여성들이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수난사를 그린다. 그런 점에서 그의 등단작인 중편 <씨앗불>에서부터 2009년 작 장편 <내가 가장 예뻤을 때>로 이어지는 공선옥 소설의 핵심적 주제를 또 한번 변주한 셈이다. 변주는 반복과는 다르다. 공선옥은 자신의 문학적 화두를 지속시키면서 동시에 변화를 주고자 한다. 우선, 이야기를 80년 5월 광주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소설은 모두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는데, 첫 장은 그해 5월이 오기 전 ‘새정지’라는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삼는다. 새마을운동 바람에 휩싸인 이 마을의 풍경은 이렇게 그려진다. “시멘트 가루는 온 동네를 휘감았다. 동네에 시멘트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시멘트가 된 소한테 시멘트 여물을 주었다. 시멘트 여물을 먹은 소가 싼 시멘트 소똥이 시멘트 길 위에 쏟아져 바로 굳었다. (…) 손을 씻을 때 시멘트 손가락이 툭 부러졌다. 손가락은 금방 물에 녹았다. 내 손가락이 녹아든 물을 마당에 흩뿌렸다.” 이런 장면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 소설 <백년의 고독>으로 대표되는 마술적 사실주의를 떠올리기란 어려운 노릇이 아니다. 그러나 마술적 사실주의냐 아니냐보다 중요한 것은 공선옥 소설의 언어와 형식에서 보이는 뚜렷한 변화를 감지해 내는 것이다. 반복이 아닌 변주에 무게를 두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이 엿보이는 또 다른 대목이다. 동네의 모든 것을 시멘트로 뒤발해 버리는 새마을운동 바람 속에서 유일하게 전기를 가설하지 않음으로써 “국가의 기본 시책에 충실히 따르”지 않는 두 집이 소설 주인공들인 십대 소녀 정애네와 묘자네. 그렇다는 것은 가난이 상식이다시피 한 깡촌에서도 이 소녀들을 둘러싼 가난이 유독 자심했다는 뜻이 된다. 정애를 일인칭 화자로 삼은 1장에서 정애 아비가 돈을 벌겠다며 멀리 떠난 틈을 노려 이웃들은 정애네 담을 무너뜨리고 닭과 돼지를 훔쳐 가 버린다. 여동생 순애와 정애 자신에게는 성폭행조차 서슴지 않는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어미는 아무런 바람막이가 되어 주지 못하고, 충격과 기아를 견디지 못하고 순애가 먼저 세상을 뜨며, 아비와 어미가 그 뒤를 잇는다. 어미인즉 전쟁 통에 산사람(=빨치산)들에게 옥수수를 주었다는 죄로 자신의 눈앞에서 제 아버지가 총에 맞아 죽는 모습을 본 뒤로 정신을 놓아 버렸던 터. 나중에 광주로 나온 정애가 5·18의 와중에 군인들에게 몹쓸 짓을 당한 뒤 ‘오일팔 또라이’가 된 데에서 보듯 역사의 잔인한 폭력은 주로 힘없는 자들을 먹이로 삼는다. “내가 너한테 면회를 오는 것은, 너한테 속죄하고 싶어서란다. 내 생각에 너나 정애는 아무 죄 없이 살았지만 가장 많이 벌을 받는 것 같아서, 내가 사람들 대표로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서란다.” 역시 광주로 나와서 시민군 출신 박용재를 만나 살림을 차리고 알콩달콩한 결혼생활을 꿈꾸었던 묘자는, 군인들에게 당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미친 증상이 우심해진 용재가 칼을 들고 자신을 죽이려 들자 그를 목졸라 죽이고 옥에 갇힌다. 인용한 말은 과거 새정지 이장 딸 용순이가 묘자를 면회 와서 한 말이다. 용순의 남편은 공수부대원으로 5·18을 겪은 뒤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는데, 그의 말은 5·18이 80년 이전에도 면면히 이어져 왔으며 그 뒤에도 변하지 않고 있는, 여성 및 약자들의 수난의 역사의 한 정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그런 점에서 공선옥의 소설에 어떤 ‘주의’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그것은 여성주의라기보다는 ‘약자주의’가 될 것이고, 그 말은 곧 공선옥의 소설이 ‘문학’이라는 뜻이 된다. 최근 제주 4·3을 다룬 영화 <지슬>을 감명 깊게 보았다는 작가는 “5·18 역시 <지슬>처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광주에 국한되지 않는 더 크고 다른 이야기, 인간 삶 전반에 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정교하고 세련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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