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프랑스에서 <다가오는 봉기>라는 작은 책이 출판됐다. 저자는 ‘보이지 않는 위원회’였다. 이 책은 현대 자본주의가 어떻게 자아, 사회적 관계, 노동 등을 소외시키는지 분석하고, 주류 정치 바깥에 반자본주의 운동을 추진할 코뮌(공동체)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이들은 “당신이 진실이라고 느끼는 것에 참가하고, 만남의 즐거움을 경험하고, 개인을 구속하는 옷을 벗어던져라”고 말한다. 이듬해 프랑스 정부는 인구 350여명의 시골 마을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던 30대 쥘리앵 쿠파와 그 동료 8명을 이 책의 저자로 지목하고 ‘테러활동을 위한 범죄조직을 결성했다’는 혐의로 체포했다. 그들이 그곳에서 한 일은 “오래된 오두막을 복원하고 낡은 바를 다시 살리고, 근처 식료품 가게를 이동도서관과 시네클럽의 도움을 받아 협동조합으로 재조직화”하는 일 등이었다. 이들은 증거 불충분으로 모두 풀려났다.
영국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앤디 메리필드의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는 지은이의 표현대로 “이중의 불만”에서 나온 책이다. 하나는 “세계에 대한 불만”, 즉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불만이고, 또 하나는 “지는 경기를 계속하는” 기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불만이다. 지은이는 자신이 지향하는 대안적 마르크스주의 개념과 운동사례들을 풍부하게 제시하는데 <다가오는 봉기>도 그중 하나다.
그는 <뉴레프트 리뷰> 등으로 대표되는 기존 좌파 집단을 향해 다소 신랄한 비판을 퍼붓는다. 그들의 활동은 “그저 경험적 조사를 하고, 실패한 지구적 체제를 감시하고,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비판적 부정성에 골몰하”는 “무기력하고 미래도 없고, 희망도 없고,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있는 별다른 내용도 없는” “자신들의 엘리트 이너서클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참여”라는 것이다.
그는 “노동자 계급은 여전히 확고하며,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라는 사고방식과도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집단이 자본주의에 대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만 때문에 하나로 모일 수 있다면 이 반자본주의 동맹이 ‘노동자 계급’인지 아닌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층, 지식인, 탈숙련노동자, 실업자, 감원된 노동자, 느리게 살기로 마음먹은 사람, 낙오자, 부적응자, 성공하거나 좌절한 천재들…. 이들은 모두 ‘반자본주의 동맹’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이 동맹의 의제 또한 다양할 수 있다. 제3세계 부채 탕감, 어린이 노동 금지, 자동차 추방, 도시를 활력있게 만들기,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폐쇄, 고삐 풀린 지구화 길들이기, 세계를 바꾸고 삶을 바꾸기 등.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라는 용어는 라틴아메리카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로 대표되는 ‘마술적 리얼리즘’에서 빌려온 것이다. 또한 이 책 전체가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에 대한 오마주라고 해도 좋을 만큼 곳곳에서 이를 인용한다. 지은이는 그 이유를 <백년의 고독>이 “우리의 삶이 어때야 하는지에 관한 또 다른 모습을 제공하고, 진보주의자들에게 영구적인 전복의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상상적인 도구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비정규직, 실업 문제 등과 관련해 “완전고용, 제대로 된 임금과 복지가 있는 제대로 된 일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좌파의 목소리”를 비현실적이고 구시대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더 적게 일하고 더 낫게 살자가 시대정신이다”고 강조하는 대목 등 기존의 통념을 깨는 주장들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또 옮긴이가 지적했듯이 “곳곳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해방구가 전지구적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해 어떤 계획과 연결망, 전략이 필요한지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읽어 내려가다 보면 21세기가 요구하는 진보의 상상력에 대한 한 모습을 얻을 수 있다. 지난해 영국의 진보서점연합이 뛰어난 저술에 수여하는 ‘빵과 장미상’ 최종 후보 일곱 작품 안에 포함됐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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