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이 두툼한 ‘섹시 여전사’ 앤절리나 졸리가 19세기 조선 땅에서 태어났다면 예쁘단 말을 들었을까? 작품마다 남성적 폭력 세계에 맞서는 당찬 여성을 씨억씨억하게 그려온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 박정애씨가 청소년용 장편소설 <괴물 선이>를 펴냈다. 또 하나의 ‘여자 이야기’는 “미인은커녕 엄청나게 못생긴 여자 취급을 받았을”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검은 머리칼의 앤절리나 졸리’를 앞세웠다. <환절기>, <다섯 장의 짧은 다이어리>에서 웅숭깊은 시선으로 보듬은 소녀의 성장담을, 이번에는 구한말 강원도 정선과 한양을 잇는 열여섯 살 소녀의 ‘뗏목 어드벤처’로 담아냈다.
정선 아우라지에 사는 선이는 아담하고 단아한 언니 정이와 달리, 키도 크고 기골이 장대해 “눈 달린 사내한테는 시집을 못 갈 거라” 타박을 듣는 소녀다. “나는 정말로 계집애일까?” 벗 삼은 애쑥과 냉이, 민들레한테 선이는 묻곤 한다. 아랫도리에 돋아 있는 ‘구슬’은 남모를 비밀, 스스로 괴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뱃속에서부터 워낙 덩치가 커 아들이라 철석같이 믿었던 어머니는, 날 때부터 ‘저승 구경을 시킨’ 선이를 박대했다. 그런 선이를 아버지는 대목일 나갈 때마다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선이가 의지하던 아버지 소식은 ‘노랑 참새’만이 안다. 이태 넘도록 경복궁 궁궐 공사에 차출된 탓이다. 선이네 살림은 기울고 정이가 포악한 약국집 아들 재취로 들어가거나 선이가 종살이할 위기에 처한다.
선이는 경복궁 중수에 필요한 나무를 사흘 안에 가져오는 떼꾼에게 ‘떼돈’을 열 배나 쳐준단 소리에, 남장을 하고 떼를 타기로 결심한다. 신출귀몰한 앞사공 용이와 짝패를 이룬 뒷사공 선이는 정선에서 한양까지 험난한 뱃길을 떠난다. 선이를 위협하는 건 위험천만한 황새여울 물길만이 아니다. 떼돈에 눈먼 탐욕스런 인간들, 싸움과 다툼이 모여 생겨난 엽령귀의 출몰…. 선이는 뱃길 여정을 통해 “너는 누가 뭐래도 용꿈 꾸고 얻은 자식”이라는 아버지의 말과 “너는 내 오랜 꿈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는 용이의 말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 순간 선이 몸에 달려 있던 구슬이 떨어져 용이의 여의주가 되고, ‘괴물’로 오해받은 동강의 수호신 용이도 승천하여 천년 꿈을 이룬다. 진정 괴물이 누구인지, ‘정선아리랑’의 구수한 가락과 아름다운 문장이 교직되며 드러난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그림 한겨레틴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