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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진정한 민주주의 정착됐다면 박 대통령 당선 힘들었을 것”

등록 2013-03-26 20:03

25일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있는 역사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이 향후 연구소가 집중할 연구주제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5일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있는 역사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이 향후 연구소가 집중할 연구주제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역문연’ 첫 외국인 연구실장 후지이
지도자가 모든 문제 해결 바라는
권위주의 잔재가 당선의 한 이유
사회민주화, 해방 직후보다 퇴보

일본인 아닌 외국인 역사가일 뿐
외부에서 볼 때 더 잘 보일 수도

“민주화의 결과가 결국 박근혜 정부의 탄생인가? 한국 민주화운동 세력 전체가 깊이 성찰해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1987년 체제’(1987년 6월항쟁의 결과 형성된 체제)에서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계승하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87년 체제’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문제연구소의 역할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할 시점입니다.”

‘일본인 한국 현대사 연구자’라는 위치 때문에 국내 역사학계에서 눈에 띄는 존재였던 후지이 다케시(42)가 지난달 국내 유수의 역사연구단체 역사문제연구소(역문연) 연구실장에 임명되면서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후지이 실장은 성균관대에서 ‘족청(조선민족청년단)·족청계의 이념과 활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해 12월에는 박사논문을 바탕으로 한 책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를 펴내기도 했다. ‘족청’은 해방 공간에서 ‘민족주의, 반공산주의, 반자본주의’를 표방했던 단체다.

25일 서울 종로구 계동 역문연 사무실에서 만난 후지이 실장은 앞으로 연구실장으로서 집중할 과제로 ‘역문연의 역사’에 대한 성찰을 꼽았다. 이른바 ‘87년 체제’에 대한 반성과 연결돼 있는 부분이다. 역문연도 1986년 설립 이후 25년 넘게 지나면서 세대교체가 거듭 이루어졌다. 서중석·이이화 등 창립 멤버가 1세대의 주축이라면, 2세대는 소위 ‘386세대’, 3세대는 90년대 학번들이 중심이다. 막내 연구원이 1985년생으로 연구소와 거의 나이가 같다. “선배들과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속강좌 등 공개행사를 통해 선배 세대와 후배 세대가 함께 모여 역문연의 역사와 역할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지향점 등을 논의할 생각입니다.”

그럼 후지이 실장이 생각하는 ‘87년 체제’의 한계는 무엇일까? “제도적인 민주화에 머물렀다는 점입니다. ‘사회적 민주화’, 즉 실질적 민주화를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권위주의, 사회적 불평등 등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민주화가 됐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자신과 관계된 문제의 의사결정에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권위주의는 나이, 사회적 지위, 경제적 격차 등을 기준으로 ‘권위’에 차등을 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요소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됐다면 일어나기 힘든 현상이죠. 각각의 사람들이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그 결과가 축적돼 사회가 바뀌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지금 한국 국민들은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대신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권위주의의 잔재이고, 박 대통령의 당선을 가져온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가 보기에 한국의 ‘사회적 민주화’ 논의는 해방 직후보다 더 퇴보했다.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 5조는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며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전 고려대 총장은 “이 조항은 우리나라의 기본 성격을 정한 중요한 규정인데, 이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의 조화를 기도한 것”이라고 <헌법해의>에서 해설한 바 있다. 현재 정치 이슈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는 제헌헌법까지 그 뿌리가 올라가는 셈이다.

후지이 실장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탄생한 당시에는 ‘불평등이 존재하는데 민주주의가 가능하겠느냐’는 문제 제기가 가능했는데, 지금은 그러면 ‘빨갱이’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말했다. 이런 ‘퇴보’는 한국전쟁과 그 이후 체제 재정비, 5·16 쿠데타와 유신독재 등을 거치며 진행됐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연구과제로 1950년대 중·후반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의 형성 과정을 생각하고 있다. “‘박정희 신화’의 기초가 되는 빈곤타파, 경제성장 등은 19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의 주요한 화두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있는 부를 어떻게 분배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성장을 먼저 한 뒤에 분배를 할 수 있다’는 논리로 변해가는 과정을 추적하려고 합니다.”

한국 현대사 전공자로서 그는 최근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배포한 동영상 <백년전쟁>, <프레이저보고서>가 일으킨 이승만·박정희 논쟁에 대해서는 조심스럽지만 비판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이승만, 박정희 개인에 대한 평가가 중심이 되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승만이 꾸린 초대 내각에 조봉암과 같은 사람이 들어간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정권과 개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시의 사회적 역학관계, 정책의 구체적 실현 과정, 보통사람들의 삶 등을 총체적으로 살펴봐야 그 시대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는 1993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고 98년 어학연수차 다시 왔다. 그때 한국인들과 교류하며 한국 현대사를 연구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백번은 더 들었을 ‘일본인으로서 한국사를 왜 공부하느냐’는 질문에 “일본인 역사가가 아니라 외국인 역사가일 뿐이다. 때로는 내부에 있는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외부에서 더 잘 보일 때도 있다”고 대답했다. ‘왜 역사를 공부하느냐’고 다시 물어보았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자명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자명하지도 않고,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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