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가족’ 김윤식의 소설가 박완서 비평
내가 읽은 박완서
김윤식 지음/문학동네·1만7000원 2006년 5월17일, 작가 박완서(1931~2011)는 모교 서울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문과 50학번인 박완서는 당시 학제에 따라 6월에 입학했으나 곧이어 터진 전쟁 때문에 며칠 만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학위 수여식이 끝나고 작가와 네 딸, 사위 등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에 가족 아닌 외부인으로 유일하게 포함된 이가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였다. 김 교수는 당시 자신의 처지를 가리켜 ‘명예가족’이라 표현했다. 박완서의 2주기(22일)에 맞춰 나온 김 교수의 저서 <내가 읽은 박완서>는 ‘명예가족’으로서 박완서와 그의 작품에 대해 쓴 글들을 한데 모은 책이다. 1981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2>에 대해 “유려한 문체와 빈틈없는 언어 구사는 가히 천의무봉”이라는 상찬을 아끼지 않은 심사평은 당시 심사위원회의 ‘막내’였던 김 교수가 쓴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사실 등단작 <나목>(1970)의 성공 이후 신문과 잡지에 연재소설을 쓰면서 “대중적 인기놀음”으로 나아간 70년대의 작가에 대해 불만을 품었었노라고 토로한다. 순수성과 결벽성을 기대했던 것인데, 그 뒤 작가의 행보가 “대중성과 작가적 개성의 동시적 전개”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당혹스러웠노라는 고백이 뒤따른다. 작품 발표 직후 ‘현장비평’ 형식으로 쓴 짧은 글들, 작가와의 인간적 교유를 회고한 글들, 여기에다가 작가와 함께한 여행 사진들도 실렸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시골의사’ 박경철씨의 그리스 여행기
문명의 배꼽, 그리스
박경철 지음/리더스북·2만원 “내게 이런 조국을 선택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내 삶을 선택할 권리는 나에게 있다!” 대한민국 청년 멘토인 ‘시골의사’ 박경철(49)씨가 그리스 여행 첫날 먼저 접한 것은 권총자살한 은퇴 노인의 유언이었다. 정부의 연금 삭감 정책에 죽음으로 맞선 비극. 노인이 자살한 광장 뒤쪽, 비에 젖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를 보며 생각했다. “경제위기로 어수선한 오늘날 그리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석관에 새겨진 ‘슬픔에 젖은 여인’의 모습으로 그렇게 나를 맞았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는 2011년 겨울부터 1년여간 이어진 박씨의 그리스 기행 연작 10권 가운데 첫권이다. 출발은 그리스 문명의 어머니라는 본토 남서단의 펠로폰네소스(모레아)다. 코린토스·올림피아·네메아·스파르타 등 도시국가와 제례 유적들이 흩어진 ‘미궁’ 같은 모레아는 이중성이 꿈틀거리는 땅이다. “태양 같은 격정과 말라비틀어진 마른 풀 같은 무기력”과 “인류애적인 친절과 불법체류자를 둘러싸고 돌을 던지는 야만”이 공존했다. 고대의 쾌락 도시에서 볼품없이 퇴락한 코린토스 시가에 실망하지만, 산기슭 아크로코린토스 성채에서 겹겹이 깃든 고대의 영화와 로마에 짓밟힌 잔혹사가 떠올랐다. 박씨가 숭모해온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경구들이 시종 글을 따라다닌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중국 석학이 22년간 매달린 ‘노자’ 풀이
노자타설 상·하
남회근 지음, 설순남 옮김/부키·각 권 2만5000원 유가·불가·도가 등 중국 고전과 정신문화사에 정통한 난화이진(남회근·1918~2012)은 수많은 강연과 집필로 동서양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아온 중국의 대표적 석학이다. 그는 중국 문화에서 유·불·도 3교의 존재를 이렇게 비유했다. “유가는 곡물가게와 같아서 유가를 타도했다간 정신적 양식이 없어집니다. 불가는 잡화점이라 아무 때나 놀러갈 수 있으며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습니다. 도가는 약국입니다. 병이 나지 않으면 평생 상대할 필요가 없으나 일단 병이 나면 제 발로 찾아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난화이진이 2009년에 22년 만에 완간한 <노자타설>은 흔히 <도덕경>이라 불리는 <노자>의 내용을 뜯어보고, 도가 사상의 정수가 무엇인지, 5천년 중국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를 풀어주는 책이다. 그는 중국 문화가 밖으론 유가 사상을 내걸었지만, 안으로는 도가 사상을 활용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속세에서 벗어나는 데 치중한 불가, 속세에 들어오는 것에 편중된 유가와 달리 도가는 출세적인 동시에 입세적이란 점에 그 오묘함이 있으며, 크게는 천하·국가 대사에서부터 작게는 개인의 입신·처세에까지 쓰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역사·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밑거름 삼아 <노자> 경전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풀이하며, 역사 속의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도 등장시켜 그 내용들을 입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인간의 향기 담은 가식없는 수필집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조양욱 지음/엔북·1만1200원 우리나라에서 가장 따뜻한 수필을 쓰는 사람 중에 조양욱이 있다. 사적인 자리에서 필자가 형이라고 부르는 조양욱은 언론인 출신의 일본 전문 저술가다. 일본라디오단파방송이 주관하는 ‘아시아상’과 일한문화교류기금재단이 주는 ‘문화교류기금상’ 등을 받은 걸 보면, 그의 ‘일본 관찰’은 일본 지식인들도 인정하는 깊이와 넓이를 지녔다. 내가 좋아하는 양욱 형의 글은 바로 이번에 나온 책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와 같은 수필들이다. 그의 글에는 의무적인 ‘교양’이 없다. 과장도 허세도, 굳이 메시지를 담을 생각도 없다. 그러나 그의 무가식에는 둔중한 느낌표가 숨어 있다. 비유하자면 산사 울타리의 야생화라고 할까. 사원의 담장 밑에서 선기(禪氣)를 머금은 선기(善氣)를 발견할 때와 같은 그런 감동 말이다. 책 속의 33편 글이 모두 그렇다. 한 편 한 편이 사원의 야생화이고, 낭독의 기쁨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커피 한잔 뽑아들고 혼자 옥상에 선다. 남편을 기다리다 원자폭탄에 희생된 아내. 그 아내의 묵주를 손에 들고 밤낮없이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는 젊은 의사. 마흔세살 생애가 전하는 인간의 향기를 오래 가슴에 담아두고 싶다. 그의 짧은 수필 <로사리오>(묵주)는 특히 좋아하는 글이다. 아, 왜 이런 글이 교과서에 실리지 않는 것인지 유수의 편찬자들의 과문(?)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인우 기자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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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모비스 순정부품 ‘폭리’
김윤식 지음/문학동네·1만7000원 2006년 5월17일, 작가 박완서(1931~2011)는 모교 서울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문과 50학번인 박완서는 당시 학제에 따라 6월에 입학했으나 곧이어 터진 전쟁 때문에 며칠 만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학위 수여식이 끝나고 작가와 네 딸, 사위 등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에 가족 아닌 외부인으로 유일하게 포함된 이가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였다. 김 교수는 당시 자신의 처지를 가리켜 ‘명예가족’이라 표현했다. 박완서의 2주기(22일)에 맞춰 나온 김 교수의 저서 <내가 읽은 박완서>는 ‘명예가족’으로서 박완서와 그의 작품에 대해 쓴 글들을 한데 모은 책이다. 1981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2>에 대해 “유려한 문체와 빈틈없는 언어 구사는 가히 천의무봉”이라는 상찬을 아끼지 않은 심사평은 당시 심사위원회의 ‘막내’였던 김 교수가 쓴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사실 등단작 <나목>(1970)의 성공 이후 신문과 잡지에 연재소설을 쓰면서 “대중적 인기놀음”으로 나아간 70년대의 작가에 대해 불만을 품었었노라고 토로한다. 순수성과 결벽성을 기대했던 것인데, 그 뒤 작가의 행보가 “대중성과 작가적 개성의 동시적 전개”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당혹스러웠노라는 고백이 뒤따른다. 작품 발표 직후 ‘현장비평’ 형식으로 쓴 짧은 글들, 작가와의 인간적 교유를 회고한 글들, 여기에다가 작가와 함께한 여행 사진들도 실렸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박경철 지음/리더스북·2만원 “내게 이런 조국을 선택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내 삶을 선택할 권리는 나에게 있다!” 대한민국 청년 멘토인 ‘시골의사’ 박경철(49)씨가 그리스 여행 첫날 먼저 접한 것은 권총자살한 은퇴 노인의 유언이었다. 정부의 연금 삭감 정책에 죽음으로 맞선 비극. 노인이 자살한 광장 뒤쪽, 비에 젖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를 보며 생각했다. “경제위기로 어수선한 오늘날 그리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석관에 새겨진 ‘슬픔에 젖은 여인’의 모습으로 그렇게 나를 맞았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는 2011년 겨울부터 1년여간 이어진 박씨의 그리스 기행 연작 10권 가운데 첫권이다. 출발은 그리스 문명의 어머니라는 본토 남서단의 펠로폰네소스(모레아)다. 코린토스·올림피아·네메아·스파르타 등 도시국가와 제례 유적들이 흩어진 ‘미궁’ 같은 모레아는 이중성이 꿈틀거리는 땅이다. “태양 같은 격정과 말라비틀어진 마른 풀 같은 무기력”과 “인류애적인 친절과 불법체류자를 둘러싸고 돌을 던지는 야만”이 공존했다. 고대의 쾌락 도시에서 볼품없이 퇴락한 코린토스 시가에 실망하지만, 산기슭 아크로코린토스 성채에서 겹겹이 깃든 고대의 영화와 로마에 짓밟힌 잔혹사가 떠올랐다. 박씨가 숭모해온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경구들이 시종 글을 따라다닌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남회근 지음, 설순남 옮김/부키·각 권 2만5000원 유가·불가·도가 등 중국 고전과 정신문화사에 정통한 난화이진(남회근·1918~2012)은 수많은 강연과 집필로 동서양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아온 중국의 대표적 석학이다. 그는 중국 문화에서 유·불·도 3교의 존재를 이렇게 비유했다. “유가는 곡물가게와 같아서 유가를 타도했다간 정신적 양식이 없어집니다. 불가는 잡화점이라 아무 때나 놀러갈 수 있으며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습니다. 도가는 약국입니다. 병이 나지 않으면 평생 상대할 필요가 없으나 일단 병이 나면 제 발로 찾아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난화이진이 2009년에 22년 만에 완간한 <노자타설>은 흔히 <도덕경>이라 불리는 <노자>의 내용을 뜯어보고, 도가 사상의 정수가 무엇인지, 5천년 중국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를 풀어주는 책이다. 그는 중국 문화가 밖으론 유가 사상을 내걸었지만, 안으로는 도가 사상을 활용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속세에서 벗어나는 데 치중한 불가, 속세에 들어오는 것에 편중된 유가와 달리 도가는 출세적인 동시에 입세적이란 점에 그 오묘함이 있으며, 크게는 천하·국가 대사에서부터 작게는 개인의 입신·처세에까지 쓰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역사·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밑거름 삼아 <노자> 경전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풀이하며, 역사 속의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도 등장시켜 그 내용들을 입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조양욱 지음/엔북·1만1200원 우리나라에서 가장 따뜻한 수필을 쓰는 사람 중에 조양욱이 있다. 사적인 자리에서 필자가 형이라고 부르는 조양욱은 언론인 출신의 일본 전문 저술가다. 일본라디오단파방송이 주관하는 ‘아시아상’과 일한문화교류기금재단이 주는 ‘문화교류기금상’ 등을 받은 걸 보면, 그의 ‘일본 관찰’은 일본 지식인들도 인정하는 깊이와 넓이를 지녔다. 내가 좋아하는 양욱 형의 글은 바로 이번에 나온 책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와 같은 수필들이다. 그의 글에는 의무적인 ‘교양’이 없다. 과장도 허세도, 굳이 메시지를 담을 생각도 없다. 그러나 그의 무가식에는 둔중한 느낌표가 숨어 있다. 비유하자면 산사 울타리의 야생화라고 할까. 사원의 담장 밑에서 선기(禪氣)를 머금은 선기(善氣)를 발견할 때와 같은 그런 감동 말이다. 책 속의 33편 글이 모두 그렇다. 한 편 한 편이 사원의 야생화이고, 낭독의 기쁨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커피 한잔 뽑아들고 혼자 옥상에 선다. 남편을 기다리다 원자폭탄에 희생된 아내. 그 아내의 묵주를 손에 들고 밤낮없이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는 젊은 의사. 마흔세살 생애가 전하는 인간의 향기를 오래 가슴에 담아두고 싶다. 그의 짧은 수필 <로사리오>(묵주)는 특히 좋아하는 글이다. 아, 왜 이런 글이 교과서에 실리지 않는 것인지 유수의 편찬자들의 과문(?)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인우 기자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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