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의 <바보>
지난해 겨울부터 인터넷에 연재되어 누리꾼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만화 <바보>(문학세계사 펴냄)가 2권의 단행본으로 나왔다. 강풀의 것이다.
전대미문의 인기를 누렸던 <순정만화>나 공포를 그림이 아닌 만화적 얼개와 이야기로 치밀하게 담아낸 <아파트>의 강풀이 아니다. 이번엔 복고다. 주고 또 주는 60, 70년대 바보의 순정을 21세기 인터넷에 담아낸 것이다.
변치 않는 건 연기설에 대한 그의 믿음이다. 마치 저마다의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한 가족처럼 인연의 끈으로 닿아있다는 원형적 믿음이 이번에도 여실하다. 한 꺼풀 벗겨지며 서로들 엮여가는 대목이 순간 너무 작위적이거나 유치할 만큼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다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우리의 모습에 관한 만화적 단상이다. 엮이어 있고 우린 함께 살아가고 있다.
왠지 “낯이 익은 것 같은” 인물들이 갑자기 나타난 지호를 축으로 하나하나 엇갈리거나 맞붙게 된다. 촉망 받는 피아니스트였다. 어느 순간 피아노가 두려워져 미국에서 뛰쳐나왔다. 중학교 때 유학을 떠나 10년이 흐른 때였다. 지호는 7살 때도 피아노가 싫었다. 그때 아내의 뱃속 아기에게 모차르트 <작은별 변주곡>을 들려주는 어떤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 피아노에 재미를 붙였다.
승룡인 바보다. 초겨울, 연탄가스를 마신 7살 때부터다. 아빠가 죽을 힘으로 그를 방 밖으로 밀어내지 않았다면 남은 정신도 승룡의 것은 아니다. 아빠는 그리고 죽었다. 둘째를 밴 엄마는 기뻐서 친정으로 간 날이었다. 아빠를 묻고 오던 날, 지호의 2층집에서 피아노 반주가 들려왔다. 눈이 내렸다. 아빠가 별이 됐다는 엄마의 흐느낌. 승룡인 그때 지호를 평생 가슴에 담았다. “아빠는 별이 됐는데 그 애가 ‘작은별’을 치면 별(눈)이 내려.” 엄마가 죽을 때도 피아노가 들려왔다.
승룡인 죽는다. 자신을 오빠로 인정하지 않던 동생 지인이를 위해, 평생 단 한 사람의 친구로 남아준 건달 상수를 위해. 지호를 피아노에 다시 앉힌 것도 승룡이다. 미국으로 돌아가 다시 성공적으로 독주회를 마친 날, 승룡은 가장 빛나는 별이 된다.
그 겨울 해질녘.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는 7살 승룡이 달려간다. 지호도 달려간다. 저마다 사연을 안고 정신없이 뛰던 꼬마 넷이 그러다가 부딪혔다. 인연의 시작이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던 것이다.
비현실적입네, 진부합네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린 모른잖는가. 어느 마을에나 한 명씩은 있을 법한 바보가 실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동감>의 김정권 감독이 영화로 만들고 있다. 각 권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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