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심을 다해 지은 왕의 무덤, 조선 왕릉
임소연 글, 오연 그림, 신병주 감수/문학동네·1만2000원
임소연 글, 오연 그림, 신병주 감수/문학동네·1만2000원
영화 <후궁>에서는 왕이 승하한 뒤 내시가 궁궐 지붕에 올라 왕의 웃옷을 잡은 채 북쪽을 바라보며 “상위복”이라고 세 번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상위’는 왕, ‘복’은 돌아오라는 뜻으로, 왕의 혼령으로 하여금 자신의 옷을 알아보고 돌아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북쪽을 향해 부르는 것은 북쪽에 죽음을 다루는 신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세 번 외치는 것은 셋을 성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10쪽)
<조선 왕릉>은 왕과 왕비의 장례(국장)를 치르고, 왕과 왕비의 무덤인 왕릉을 만드는 과정을 사진과 함께 알기 쉽게 풀어놓은 그림책이다. 왕의 장례는 선왕이 승하한 날로부터 5일 뒤 치러졌다. 유교 이념에 따라 적어도 5일 동안은 왕의 혼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5일째 되는 날에도 왕이 살아나지 않으면 그제야 왕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왕릉으로 모시기 전까지 왕과 왕비의 관을 두는 전각인 빈전으로 주검을 옮긴다. 본격적인 장례 절차는 그 다음날부터 들어간다. 왕릉에 모시는 발인은 관에 모신 뒤 5개월이 지나 치러졌다고 한다. 왕릉을 만드는 데 소요되는 노동력과 시간을 고려해서라는데, 이 기간 동안 주검이 부패하지 않도록 그 아래에 얼음을 둔 평상에 관을 모셨다.
이밖에도 책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봉분 위에 무성하게 드리워진 억새풀의 의미, 옆이 영원히 빈자리로 남게 된 정성왕후(영조의 첫번째 왕비)의 홍릉 이야기, 도성에서 가까운 곳에 왕릉군(서오릉·동구릉)이 만들어지게 된 까닭, 왕릉의 구조와 왕릉에 세우는 건축물, 왕릉을 지키는 능참봉, 부장품 등 장례·왕릉과 관련한 내용들이 다채롭게 실렸다. 현재 남한에는 40기의 조선 왕릉이 남아 있는데, 2009년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올랐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