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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현실 비판 담은 참요, 요즘 트위터와 닮아”

등록 2012-08-12 20:26

한문학자 심경호 교수(고려대)
한문학자 심경호 교수(고려대)
심경호 교수 ‘참요, 시대의 징후를…’
짧고 간결한 음악적 언어로
민중 불만 통쾌하게 대변한
예언적 참요 120편 번역·해설
정치변화 암시한 내용 가득
참요가 ‘대항언론’ 구실 맡아
<참요, 시대의 징후를 노래하다>
<참요, 시대의 징후를 노래하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가보리”(<가보세요(謠)>)

이 구전 민요는 창작 시기가 불명확하지만, 육십갑자와 우리말을 중의적으로 사용해 동학농민전쟁을 노래한 것으로 해석된다. 농민전쟁이 발발한 갑오년(1894)과 그에 이은 을미(1895)·병신(1896)년을 ‘가보다’ ‘미적대다’ ‘병신’이라는 우리말에 포갬으로써 동학농민전쟁의 좌절을 안타까워하는 민중의 심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짧고 간결한 음악적 언어로 현실에 대한 불만과 우려를 표현한 노래를 ‘요’(謠)라 하며, 그중에서도 예언에 대한 믿음을 가리키는 도참사상에 기반한 요를 ‘참요’(讖謠)라 이른다. <김시습 평전> <간찰, 선비의 마음을 읽다> <자기 책 몰래 고치는 사람> 등의 저서로 알려진 한문학자 심경호 교수(고려대·사진)가 새로 펴낸 <참요, 시대의 징후를 노래하다>(한얼미디어)는 우리 고전 문헌에서 찾아낸 참요 120여 편과 관련 글을 번역해 싣고 설명을 붙인 책이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얼어 두고/ 서동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는 백제의 <서동요>에서부터 “사대문 걸고/ 나비잠만 잔다”는 구한말 <나비잠요>까지를 시대순으로 배열하고 그 역사적 배경을 서술함으로써 노래를 통한 역사 공부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백제는 둥근달(百濟同月輪)/ 신라는 초승달(新羅如新月)”(<백제월륜요>)

“목자가 나라를 얻는다(木子得國)”(<목자요>)

<삼국사기> ‘백제본기’ 중 의자왕조에 나오는 <백제월륜요>는 의자왕 20년인 660년 사비성에서 나타난 불길한 징조들에 얽힌 설화와 함께 전한다. 달이 차면 기운다는 우주의 이치에 기대 나라의 위기를 경고한 이 노래에 의자왕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 결과는 백제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목자요>는 고려 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무렵 민간에서 널리 불렸던 노래로, 이성계 쪽 사람들이 만들어 퍼뜨렸을 가능성이 높다. 한자 ‘木子’는 ‘李’를 파자(破字)한 것으로, 이씨 성을 가진 이성계가 장차 나라를 얻게 되리라는 예언을 담고 있다.

이처럼 참요는 시대의 혼란기와 격변기에 민간에 유행하면서 정치 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암시하는 내용이 많다.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들어서려는 징후를 앞장서 포착했기 때문에 ‘공식 언론’이 외면하거나 억압하는 민심과 시대 흐름을 전달하는 ‘대항 언론’의 구실도 맡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대체로 분량이 짧고 압축적이며, 정치 현실에 대한 불만을 담은 내용이 많고, 매우 빠른 속도로 민중 사이에 퍼져 나간다는 점에서 참요는 오늘날의 트위터와 매우 닮았다”고 지은이 심경호 교수는 말했다.

“제가 오십몇 년을 살아 보니 민간에 떠도는 말이란 게 대개 거짓이 없습니다. 참요가 미래에 대한 예언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뿌리는 현실에 대한 불만과 비판에 있게 마련입니다. 다산 정약용이 ‘유언비어가 거두어져서 보리뿌리로 들어간다’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유언비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한 것도 그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밭이 있으면 세금이 없고 세금이 있으면 밭이 없다”(有田無稅 有稅無田)는 말로 조선 중기의 부조리하고 부당한 조세 정책을 꼬집은 <유세무전요>, “수원은 원수(水原寃讐)/ 화성은 성화(華城成火)/ 조심태는 태심(趙心泰太甚)”이라며 화성 축성 감독관 조심태의 가혹한 닦달을 비난한 <수원요> 등에서 보듯 참요는 민중의 억눌린 심사를 통쾌하게 대변하는 구실을 했다. 심 교수는 “학자인 제 역할은 문헌 고증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최대한 충실하게 전달하는 것이며, 옛노래가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독자들이 스스로 현재의 상황에 대비해서 이해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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