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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18세기 한양의 시끌벅적 대보름날

등록 2012-05-11 20:30

<한양> 정승모 글, 강영지 그림/ 보림·1만5000원
<한양> 정승모 글, 강영지 그림/ 보림·1만5000원
<한양> 정승모 글, 강영지 그림/ 보림·1만5000원

경인년(1770년) 정월 열닷새, 대보름날이다. 종각의 종이 33번 댕댕댕 울리자 굳게 닫힌 성문이 열린다. 한양의 하루가 시작된다. 아침을 여는 건 시전 상인이다. 목덜미가 까만 미나리 장수, 얼굴이 까만 새우젓 장수가 목청을 높인다. 미나리 장수는 이른 새벽에 동쪽 왕십리에서 해를 지고 와 목덜미가 탔다. 새우젓 장수는 서쪽 마포에서 햇볕을 받으며 들어와 얼굴이 그을렸다. 남산 기슭 남촌엔 가난한 선비들이 산다. 박 생원이 아침식사 전, 맑고 차가운 술을 한잔 마신다. 대보름에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는 귀밝이술이다. 북악산 자락 북촌에선 벼슬아치들이 궁궐로 출근할 준비를 한다. 겨울이니 진시(오전 7~9시)에 출근해 신시(오후 3~5시)에 퇴근한다. 궁에선 77살이 된 영조 임금이 백성들이 밤새 다리밟기를 즐길 수 있도록 통행금지 해제를 명한다.

해질녘이 되자 도성 밖 만리재가 시끌시끌하다. 백성들 두 패가 갈려 돌싸움이 시작된다. 돌싸움에서 이기는 쪽 지역에 풍년이 든다는 믿음에 돌팔매질이 힘차다. 장터에선 탈놀이가 시작됐다. 휘영청 달 밝으니 춤판이 신명난다. 말뚝이, 쇠뚝이 탈을 쓴 놀이꾼들이 산대놀이 대장을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춘다. 광통교와 수표교에선 다리밟기가 한창이다. 대보름에 다리밟기를 하면 일 년 내내 다릿병이 생기지 않는다 하여 한양 사람이면 너나없이 다리를 건너다닌다. 밝디밝은 달의 둘레가 두터운 걸 보니 올해는 풍년이 들 듯하다.

<한양>은 18세기 후반 한양 도성의 구석구석과 사람살이를 담은 그림책이다. 대보름날을 잡아 도성 안의 생활사를 들려준다. 신분제도, 생활양식, 세시풍속 정보가 그림 사이 빼곡하게 차 있다. 240년 전 한양의 모습은 서울의 현재와도 닮았다. 어물전 시전 상인 윤 대방은 마포나루에서 다른 상인들과 생선 확보 경쟁을 벌이느라 시름이 깊다. 오늘날의 하숙인 행랑살이를 하는 서민은 주인집 집안일을 대신하며 집 없는 설움을 겪는다. 김 판서는 오늘도 족자에 걸린 겸재 정선의 금강산 그림을 보며 싱글벙글한다. 양반들 사이에서 겸재 그림은 명품 중의 명품이다. 여인들 사이엔 소설책이 열풍이다. 수표교에 사는 김 소사는 책방인 세책점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다. 필사본 <구운몽>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등을 지낸 저자는 꼼꼼한 사료연구로 당시 한양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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