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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정봉주 감옥 보낸 ‘주범’은 따로 있다

등록 2012-03-16 15:34수정 2012-03-16 16:41

〈정봉주는 무죄다〉
〈정봉주는 무죄다〉
〈정봉주는 무죄다〉
박용현·이순혁 지음/씨네21북스
누리꾼들이 판결에 반발해 법관에 화살 돌리자
비판했던 양승태 대법원장 2년간 선고 미룬 장본인

‘정봉주’ 세 글자 표현의 자유가 처한 위기 보여줘
〈한겨레〉 박용현·이순혁 기자가 풀어본 ‘정봉주법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을 감옥으로 보낸 ‘주범’은 따로 있다!”

지난해 12월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2007년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비비케이’(BBK)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등 허위사실을 퍼뜨린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로 정 전 의원에 대해 징역 1년형을 확정 선고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판결에 반발하며 주심인 이상훈 대법관에게 공격의 화살을 돌렸고 개인신상까지 공개하는 등 파장이 일었다. 이 가운데 양승태 대법원장은 “재판과 법관에 대한 비판이 도를 넘어 저급하고 원색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는 무차별적인 공격의 양상을 띠거나 사실을 왜곡해 근거 없이 비난하는 행태가 늘어나고 있다”며 “이런 행태는 민주주의를 매우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훈계했다.

‘씨네21북스’의 신간 <정봉주는 무죄다>(박용현·이순혁 지음)가 당시 대법원 재판 양상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정작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쪽은 누구인지 의문이 들 법하다. 정 전 의원에 대한 대법원 선고는 항소심 선고일(2008년 12월11일)로부터 무려 3년 하고도 11일이 지나서 내려졌다. 이렇게 오랫동안 선고를 덮어두고 있었던 이가 바로 양승태 대법원장이다.

양 대법원장은 이상훈 대법관에 앞서 이 사건의 주심이었다. 공직선거법 제270조는 “선거범과 그 공범에 대한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하여 신속히 하여야 한다”며 “제3심에서는 전심의 판결의 선고가 있은 날부터 3개월 이내에 반드시 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양 대법관은 규정을 어기면서 2년 넘게 선고를 미루다가 대법관직에서 퇴임했다. 덕분에 정 전 의원은 총 4년여 동안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했다.

이른바 ‘BBK 의혹’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퍼뜨려 징역 1년의 실형을 확정 선고받은 정봉주 전 의원이 26일 낮 구속 수감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며 지지자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ogud555@hani.co.kr
이른바 ‘BBK 의혹’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퍼뜨려 징역 1년의 실형을 확정 선고받은 정봉주 전 의원이 26일 낮 구속 수감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며 지지자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ogud555@hani.co.kr
양 대법원장은 그 뒤 중앙선관위원장을 역임했다가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으로 지명돼 금의환향했다. 그가 중앙선관위원장으로 있던 시절 선관위는 4대강 반대 운동과 무상급식 운동을 선거법 위반이라며 직권으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정 전 의원에 대한 선고를 미룬 것 아니냐는 비판마저 나왔다.

책은 정 전 의원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표현의 자유가 처한 위기와 현실을 짚었다. ‘정봉주’라는 세 글자는 한 정치인의 이름을 넘어 대한민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처한 상황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 이 상태로라면 다가오는 4·11 총선에서 정치인들에 대한 활발한 의혹 제기에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들은 모두 잠재적인 ‘제2의 정봉주’인 셈이다. ‘정봉주법’이 하루 빨리 도입되어야 할 이유다.

정봉주 전 의원과 함께 팟캐스트 방송 <나는꼼수다>(나꼼수)를 진행했던 시사평론가 김용민씨도 최근 그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갑에 출마했다. 나꼼수를 통해 정 전 의원과 함께 각종 의혹들을 줄기차게 제기한 ‘동지’였고, 앞으로도 이어갈 것을 다짐한 그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미국 헌법의 관점에서 보면 정 전 의원의 징역형은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다. 미국의 경우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선진적이라고 평가받는 외국의 사례에 우리 현실을 대입해 보는 것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다.

미국은 유명한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1964년)을 통해 이에 관한 원칙의 단초를 세웠다. “민주사회에서는 공공의 사안에 대해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돼야 하며, 그러다보면 간혹 잘못된 사실을 언급하게 되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이를 보장하지 않으면 표현의 자유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숨 구멍조차 막게 된다.”

당시 뉴욕타임스에 실린 광고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벌어진 흑인 민권운동에 대한 각종 테러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몽고메리 경찰을 관할하고 있었던 설리번 치안국장은 이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고 조사결과 광고의 내용은 상당 부분이 허위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미국 연방대법원은 광고를 실었던 약자들의 손을 들어주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공적인 이슈에 대한 토론은 방해받지 않아야 하고, 강력해야 하며, 널리 열려 있어야 한다는 원칙, 그러자면 정부와 공직자를 향해 격렬하고 신랄하고 때론 불쾌할 정도로 날선 공격이 가능해야 한다는 원칙에 온 나라가 충실해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은 이런 명예훼손 사건을 당사자 사이의 민사사건이 아니라 공권력이 나서서 형사사건으로 다루는 세계 몇 안되는 불명예스런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이명박 대통령 쪽은 정 전 의원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를 취하했지만 이 대통령과 BBK 사건이 무관하다고 결론냈던 검찰은 여기에 달려들어 결국 그를 기소했고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징역 1년을 확정했다. 시민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정치적 토론의 장을 국가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한 셈이다.

문제는 정부기관과 사회 주요영역에서 보수가 ‘과점’인 대한민국 현실에 이는 정치적 편향성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정봉주 구속은 이 점에서도 역시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다. 애초 BBK 사건을 처음 들고 나온 이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경선 후보였다. 비록 정 전 의원과 박 후보가 제기한 의혹 내용과 수위에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한쪽은 징역 1년형을 받아 구속되고 다른 쪽은 아예 법정에 서지조차 않은 것은 형평성을 잃은 처사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

그러나 보수 언론을 비롯한 사회 일각은 ‘고소왕’ 강용석 무소속 의원의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병역비리 의혹 제기를 예로 들며 정봉주법이 “무책임한 폭로를 양산할 것”이라고 역공을 펼치고 있다.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박용현 <한겨레> 오피니언넷 편집장과 사회부 사건팀과 법조팀에서 잔뼈가 굵은 이순혁 <한겨레> 기자는 왜 정봉주법 도입이 민주주의 확립에 치명적인 문제인지를 풍부한 사례와 명쾌한 시각으로 설파해 나간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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