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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퇴계냐 율곡이냐, 정치사상 ‘맞대결’

등록 2011-04-01 21:34수정 2011-04-02 04:11

왼쪽부터 율곡 이이(1536~1584), 퇴계 이황(1501~1570)
왼쪽부터 율곡 이이(1536~1584), 퇴계 이황(1501~1570)
조선사회 진단·처방 담은 상소문
‘무진육조소’ ‘만언봉사’ 비교검토
각각 성군의 길·수신과 안민 강조
〈퇴계 vs 율곡,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
김영두 지음/역사의아침·1만3000원

<퇴계 vs 율곡,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는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는 두 사상가 퇴계 이황(1501~1570·오른쪽)과 율곡 이이(1536~1584·왼쪽)의 정치사상과 정책방향을 비교해 두 사람의 같음과 다름을 살피는 책이다. 지은이 김영두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2004년에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를 펴내 선생과 후학 사이에서 벌어진 조선시대 가장 치열하고 아름다운 철학논쟁을 소개해준 바 있다. 이번 책은 철학담론 자체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조선 성리학의 두 거두가 올린 상소문을 비교해 그들이 자신들의 시대를 어떻게 진단하고 어떤 처방을 내놓았는지 검토한다. 이 책이 다루는 상소문은 퇴계의 <무진육조소>(1568)와 율곡의 <만언봉사>(1574)다.

이 상소문들을 검토하기에 앞서 지은이는 먼저 퇴계와 율곡이 어떤 인연으로 맺어졌는지 이야기해준다. 나이가 35살 차이가 나는 퇴계와 율곡은 사림정치가 막 본격화하던 시대를 함께 산 동시대인이었다. 또 두 사람은 직접 만나 대화하고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였다. 남아 있는 편지만 십수통에 이른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퇴계가 58살, 율곡이 23살 때인 1558년(명종 13년)이었다. 퇴계는 당시 고향 도산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율곡이 찾아가 사흘 동안 머물며 함께 시를 짓고 문답했다. 당시 퇴계는 조선 ‘사림의 종장’으로 존경받고 있었으며, 율곡은 어린 시절에 이미 신동으로 알려진 ‘빼어난 후배’였다.

퇴계와 율곡은 이때에도 또 이후에도 학문적 논쟁을 벌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성리학 사상에 중대한 차이가 있음이 훗날 분명해졌다. 주자학의 ‘이기론’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랐던 것이다. 퇴계는 ‘주리론’의 주창자로서 영남학파의 태두가 됐고, 율곡은 ‘주기론’의 입안자로서 기호학파의 비조가 됐다. 이(理)를 중심에 둔 퇴계의 사상과 기(氣)를 앞세우는 율곡의 철학은 조선 후기 수백년 동안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됐다. 퇴계와 율곡의 이런 사상적 차이가 그들이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에서도 거의 그대로 드러난다. 퇴계는 원리와 근본을 틀어쥐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율곡은 구체적인 방책에까지 관심이 뻗어 있다.


퇴계는 조정에서 끝없이 불러 관직을 맡기는데도 한사코 사양하고 번번이 물러났다. 그의 마음은 학문과 교육에 쏠려 있었다. 이런 성향대로 퇴계는 임금에게 올린 상소도 아주 적은 편이어서, <무진육조소>를 포함해 모두 다섯 건을 남겼다. 반면에 율곡은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선비의 의무라고 생각했고, 우국충정으로 근심이 가시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퇴계가 자꾸만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율곡은 자신의 정치관대로 숱하게 상소를 올렸다. 지금 남아 있는 것만 해도 59건에 이른다.

<무진육조소>는 퇴계의 처신으로 보면 아주 예외적인 글이다. 국정운영의 원칙과 방향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밝힌 유일한 상소이기 때문이다. ‘무진육조소’란 무진년(선조 1년)에 올린 육조(여섯 항목)의 상소라는 뜻이다. 68살의 노학자가 17살 어린 왕에게 마음을 다하여 올린 글이 이 상소다. 퇴계는 이 글에서 어떻게 하면 국왕이 성군으로서 자격을 갖출 수 있는지 힘주어 이야기한다. 반면에 긴급히 처리해야 할 국정의 문제에 대해서는 마지막 항목에서 간단히 언급하고 그친다. “국왕이 성군으로 성장한다면 그런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이 퇴계가 임금과 대신과 대간(사간원·사헌부)을 머리, 배·가슴, 눈·귀에 비유해 삼권의 분립과 조화를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임금은 나라의 머리요 대신은 배와 가슴이요 대간은 귀와 눈입니다. 셋은 서로가 있어야 완전해지니 실로 나라가 있는 한 바뀔 수 없는 형세입니다.” 임금이 중심에 서되 선비가 함께 정치를 하는 사림정치의 이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율곡은 성군이 나와 나라의 근본을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 점에서는 퇴계와 생각이 같았지만, 당대의 문제를 적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방책을 구체적으로 밝힌다는 점에서 퇴계와 달랐다. <만언봉사>가 율곡의 정치사상과 정책대안을 가장 풍부하고 절실하게 보여주는 글이다. ‘만언’(萬言)은 ‘1만자는 되는 말’을 뜻하며 ‘봉사’(封事)는 ‘밀봉하여 올린 글’을 뜻한다. 할 말이 많아 그렇게 긴 글을 올린 것이다. <만언봉사>는 선조 7년에 쓴 것인데,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는’ 변괴가 일어나자 선조가 널리 조언을 구하는 ‘구언교서’를 내린 데 대한 율곡의 답변이었다. 이 상소에서 율곡은 ‘괴변’에 대한 진단과 대책을 내놓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일곱 가지 실질’을 거론하고 그 실질에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퇴계가 근본을 강조한 것과 다르게, 율곡은 수신(修身)과 안민(安民)을 동시에 강조한다. 임금이 도를 닦고 덕을 쌓는 것과 함께 법령과 제도를 시대에 맞추어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치가·개혁가로서 율곡이 확실히 구체적이고 실천적이었음을 <만언봉사>는 보여준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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