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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알렉산드로스의 ‘휴머니즘’을 탐닉하다

등록 2011-03-25 20:09

〈그리스인 이야기 1·2·3〉
〈그리스인 이야기 1·2·3〉
스위스 출신 ‘참여 지식인’ 보나르
고대 그리스 문명사적으로 통찰
“대왕의 이념, 기독교·혁명이 계승”
〈그리스인 이야기 1·2·3〉
앙드레 보나르 지음/책과함께·각 권 1만8000~2만5000원

그리스 신화의 잔인한 이야기들은 그저 신화일 뿐일까? 가령, 아가멤논 왕이 아르테미스의 분노를 달래려고 딸 이피게네이아를 죽여 제물로 바쳤다는 이야기는 어떤가?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기원484~406)가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트로이 원정군 사령관 아가멤논의 친딸 살해를 극적으로 묘사했을 때, 그는 그냥 신화를 되풀이한 것이 아니었다. 에우리피데스가 네 살 무렵 겪었던 페르시아 전쟁 때 이 신화와 거의 똑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살라미스 해전이 벌어진 그 역사적인 날 아침에 그리스연합군 사령관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 최고집정관의 친조카 세 사람을 목졸라 죽여 디오니소스 신에게 바쳤다. 그리스인의 ‘야만성’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리스 모든 도시에서 가장인 아버지는 새로 태어난 아이를 버릴 권리가 있었다. 신화에서만 아비가 아들을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또 그리스 도시에서 아버지는 다 큰 자식을 노예 상인에게 팔아먹어도 괜찮았다. 그렇다면 그렇게 잔인한 그리스 야만인들이 만들어낸 문명의 정체는 무엇일까?

알렉산드로스 대왕(기원전 356~323)
알렉산드로스 대왕(기원전 356~323)
세 권으로 된 <그리스인 이야기>는 이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그리스 문명의 그 정체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스인은 야만인으로 시작했고, 그 뒤로도 야만인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지만, 결국 문명인으로서 고대사에 유례를 찾기 어려운 업적을 남겼다. 지은이 앙드레 보나르(1888~1959)는 스위스 로잔대학에서 그리스문학을 가르친 고전 그리스 전문학자다. 그는 파시즘에 저항하는 참여 지식인이었고, 전후에는 동서 냉전 체제 속에서 평화운동을 벌이다가 1952년 ‘소련의 스파이’ 혐의로 체포돼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리스인 이야기>는 말년의 보나르가 이런 사건을 겪으며 쓴, 이 분야의 고전이 된 저작이다. 원제가 ‘그리스 문명’인 이 책은 기원전 8세기~기원전 3세기 사이 그리스 역사의 흐름을 문제 중심으로 풀어가는 일종의 문화사 저작이다. 문학·철학·역사·예술을 아울러 문명사적 통찰을 이끌어낸다.

이 책에서 보나르의 관심을 요약하는 말을 하나만 고르라면 ‘휴머니즘’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그리스 문명의 목적은 하나다. 자연에 맞서 인간의 능력을 키우는 것, 인간다움을 완성하는 것. 우리는 이것을 휴머니즘이라고 부른다.” 지은이는 또 문명이라는 것을 식물에 비유한다. “문명은 식물들과 같은 단계를 밟는다. 씨앗이 배태돼 싹이 나며, 성장하고, 흔히 문명의 고전시대라고 하는 시기에 만개했다가 피었던 꽃이 시들고, 노화하며, 쇠락기에 접어들어 결국 죽는다.” 지은이는 휴머니즘이라는 주제를 염두에 두고 이 문명의 성쇠를 따라가는데, 그의 관심이 특별히 집중되는 곳은 그리스 도시 국가의 쇠락을 다룬 제3권, 그중에서도 도시국가 체제를 무너뜨리고 제국을 세운 알렉산드로스 대왕(기원전 356~323·사진)의 대담하기 이를 데 없는 행로다.

“알렉산드로스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이들처럼 영광을 가져다준 예전의 사회구조를 재건하려 들지 않았다. 이제는 너무 작아진 옷을 구차스럽게 늘리려고 인간힘을 쓰지 않았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쳐 끊어버렸다는 전설은 그의 결단력과 돌파력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그리스를 제압한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334년 헬레스폰투스 해협을 건넌다. 그는 페르시아제국의 땅으로 들어가 소아시아를 제압하고 이집트를 정복한 뒤 331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327년에는 인더스강에 이르렀다. 이 책은 알렉산드로스의 인도 도달을 ‘그리스 인본주의와 불교 인본주의의 만남’이라고 묘사한다.

알렉산드로스가 인도에서 만난 금욕수행자들은 그리스 철학자들을 연상시켰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인간이 사랑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무엇인가?”라고 젊은 왕이 묻자 수행자는 “모든 이들 가운데에서 가장 권능 있는 자가 된 후에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 자”라고 답한다. 알렉산드로스는 다른 고행자들도 만났는데, 벌거벗은 그 고행자들은 왕에게 소크라테스·피타고라스·디오게네스와 다르지 않는 권위를 지니고 말했다. 왕은 이 고행자들에게 애착을 느꼈다.


지은이가 여기서 강조하는 것이 알렉산드로스가 우정의 이름으로 유럽과 아시아, 그리스인와 비그리스인(바르바로스)을 통합하려 했다는 점이다. 알렉산드로스 이전까지 그리스인들의 생각은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여주인공이 한 말에 집약돼 있다. “바르바로스는 노예가 되기 위해 태어났으며, 그리스인은 자유를 위해 태어났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이런 관념에서 벗어나 “모든 인간들은 그리스인이건 비그리스인이건 형제들이다”라는 생각에 도달했으며, 실제로 그 관념을 실천하려고 애썼다. 알렉산드로스가 요절하고 20년 뒤 스토아 학파를 창시한 제논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인간들은 이 세계의 시민이다.” 제논의 생각을 한 세대 먼저 실행에 옮긴 사람이 알렉산드로스였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세계시민주의 이념은 이후 기독교의 창시자 파울루스(바울)에게 이어지고 1789년 프랑스혁명에서 폭발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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