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 덕분에
[하니스페셜] 북하니/
그 녀석 덕분에
1925년 카프카는 <변신>이라는 작품을 통해 ‘내가 벌레가 되던 날’의 충격을 전했다. 2011년 이경혜는 <그 녀석 덕분에>에서 ‘벌레가 내가 된 날’을 말한다. 100년 가까운 시차를 두고 두 작가가 정반대의 경험을 이야기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수험생 장양호는 똑같이 생긴 가짜 양호에 떠밀려 집에서 쫓겨난다. 가짜 양호는 방구석에 살던 바퀴벌레의 변신체였다. 양호는 자신의 삶을 자신보다 더 능숙하게 대행하는 ‘바퀴벌레 양호’를 보며 ‘나는 누구인가’를 묻다가 묘한 동지애를 느껴 그와 친구가 된다. 벌레가 된 자괴감에 시달리던 <변신>의 그레고리와 달리 양호는 바퀴벌레에게 허위의 삶을 맡겨버리고 진짜 삶을 찾아 홀로 나선다. 그만큼 현재의 삶이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통쾌한 역설이다. 삶의 언저리를 배회하던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하고 본래 심장의 드럼소리를 되찾는다.
이경혜는 전작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를 통해 가슴까지 청소년의 삶으로 걸어 들어갔다면 이번 작품집에서는 그 삶에 풍덩 뛰어든다. 인물들은 넉살스럽지만 타인의 상처를 예민하게 어루만질줄 알며 밑바닥을 직시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책 속에 등장하는 밴드 ‘달빛요정’의 노래처럼 ‘절룩거릴’ 줄 알 때 우리는 ‘행운아’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의 작품에서는 현실 자각과 패배가 정비례하지 않는다. 놀라운 에너지를 되돌려준다. 청소년 문학의 명징한 얼굴을 보았다. 이경혜 지음/바람의 아이들·9천원.
김지은/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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