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 마사오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사상사학자
다양한 형식과 내용 글 61편 묶어
‘혹닉’ 검토·‘근대초극론’ 비판도
다양한 형식과 내용 글 61편 묶어
‘혹닉’ 검토·‘근대초극론’ 비판도
<전중과 전후 사이 1936~1957> 마루야마 마사오 지음·김석근 옮김/휴머니스트·3만5000원
20세기 일본 정치사상사학자 마루야마 마사오(1914~1996·사진)의 저작 <전중과 전후 사이 1936~1957>이 정치학자 김석근씨의 번역으로 나왔다. 마루야마는 20세기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서 ‘전후 사상의 원점’, ‘전후 민주주의의 이론적 리더’로 불렸으며, 지식계에 ‘천황’처럼 군림해 ‘마루야마 덴노(천황)’라는 별명으로 통하기도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마루야마를 가리켜 “일본의 여러 전문분야의 지식인들에게 ‘공통의 언어’를 제공해준” 사람이라고 평했는데, 그 평가대로 자신의 영역인 정치학을 넘어 지식계 일반에 깊은 영향을 준 사상가였다.
마루야마의 지적 활동은 크게 보아 일본 정치사상사에 대한 연구와 정치·사회 현실에 대한 이론적 개입이라는 두 분야로 나뉜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일본 정치사상사 연구>(1952)가 전공 분야를 천착한 저작이라면, <현대 정치의 사상과 행동>(1956)은 전후 일본 현실에 대한 비판적 진단을 모은 저작이다. 이번에 번역된 <전중과 전후 사이>는 마루야마가 도쿄제국대학 졸업반이던 1936년부터 1957년까지 쓴 글을 묶은 책이다. 이 시기에 마루야마는 도쿄제국대학 조교수로 임용됐다가(1940), 1944년 태평양전쟁 말기에 징집된 뒤 1945년 8·15 패전 이후 학계로 돌아왔다. 이어 1951년 폐질환 진단을 받아 두 차례 폐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고 1956년까지 장기간 요양생활을 했다. 바로 이 20여년 동안 쓴 글들 가운데 먼저 출간된 두 저작에 들어가지 않은 글들이 이 책에 묶였다. 8·15 이전에 쓴 글 25편, 전후에 쓴 글 36편을 합쳐 모두 61편의 글이 수록됐다.
이 책에는 마루야마 자신이 ‘본점’이라고 표현했던 정치사상사를 다룬 글들과 그가 ‘야점’이라고 표현했던, 사회 현실에 대한 발언을 담은 글들이 시간 순서대로 실려 있다. 또 문학·영화·음악과 같은 교양 일반에 대한 마루야마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글들도 있다. 글의 형식도 다양하다. 전형적인 논문형 글에서부터 서평·단상·대화문·강연문·일기문까지 여러 형식의 글들이 망라돼 있다. 이 책에 묶인 글들이 모두 수집된 것은 1957년이었는데, 1976년에야 세상의 빛을 보았다. 잡다한 형식과 내용 때문에 선뜻 내지 못했던 것인데, 출간 이듬해에 제4회 오사라기 지로상을 받은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 생각의 깊이와 식견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엄격한 학술논문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글쓴이 사유의 현장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지적 구조물을 세우는 데 필요한 자재들이 널려 있는 건축 현장의 마루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루야마가 사상사 연구자를 “다양한 성격으로 분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배우의 작업”이라고 말하는 짧은 글이 그런 경우다. 사상이라는 것은 개념이나 논리만으로는 알 수 없으며 사상을 제대로 느끼려면 그 사상을 낳은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 내면을 추체험해야 한다는 얘기다. 배우의 자세로 사상가들의 내적 삶을 생생하게 살아보는 것이 마루야마의 사상 이해 방법인 셈이다.
그런 식의 사상 이해를 통해 그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온 사람이 메이지시대의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다. 마루야마는 말년의 대작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1986)에서 젊은 시절 수없이 반복해 정독한 사상가가 후쿠자와였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 책에서도 여러 번 후쿠자와 사상을 검토한다. 마루야마가 사상가로서 거의 동일시하는 사람이 후쿠자와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후쿠자와가 남긴 가장 큰 족적을 “모든 형태의 ‘혹닉’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짧은 문장으로 설명하는데, 후쿠자와의 전용어라 할 ‘혹닉’(惑溺, 미혹되어 허우적거림)이라는 말 속에 일본 정신의 미성숙과 전근대성이 요약돼 있다고 본다. 이 혹닉 상태에서 거들먹거리는 일본의 미래를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는 <그 후>(1909)에서 “소와 경쟁하는 개구리와 같아서 이제 자네, 배가 터질 것이네”라는 말로 예고했다. 그리고 그 혹닉의 사상적 표현이 태평양전쟁 시기에 일본 지식계를 휩쓴 ‘근대초극론’이었다.
군국주의적 탈근대론이라 할 근대초극론은, 마루야마가 보기에, 근대의 과제도 달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근대를 넘어선다고 큰소리치는 일종의 허세다. 마루야마는 그런 허세를 17세기 영국 정치사상가 존 로크의 <통치론>을 빌려 비판한다. 로크는 <통치론> 1부에서 당대의 반동 사상가 로버트 필머의 ‘왕권신수설’을 통렬하게 공박했다. 로크의 비판은 근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시발점이 된 명예혁명의 이론적 판본이었다. 250년 뒤의 일본은 여전히 천황을 신으로 모시는 일본판 왕권신수설의 나라였다. 그런 천황의 나라가 근대의 초극을 말한다? ‘어불성설’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서양철학사>에서 “영국은 이미 그 단계를 통과했지만 일본은 아직 그러지 못했다”고 바로 그 일본적 후진성을 지적했다.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가 그 후진성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에 마루야마의 비판작업이 집중됐음을 이 책은 알려준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전중과 전후 사이 1936~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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