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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서구 기독교문명의 대항마는 ‘공자주의’

등록 2011-02-18 20:37수정 2011-02-18 20:51

<공자와 세계 1~5> 황태연 지음/청계·각 권 2만3000원~2만8000원
<공자와 세계 1~5> 황태연 지음/청계·각 권 2만3000원~2만8000원
정치학자 황태연 교수 야심작
공자 재해석 서양사상과 비교
‘패치워킹’ 통해 문명대안으로
정치학자 황태연(56) 동국대 교수가 다섯 권으로 된 <공자와 세계>를 펴냈다. 지은이는 독일 유학 시기를 포함해 젊은 시절 주로 헤겔·마르크스 같은 서구 정치철학을 연구하다가 근년에는 주역을 비롯해 동아시아 전통 철학을 집중적으로 탐사했다. <공자와 세계>는 지은이의 이런 공부 이력이 집결된 저작이다. 전체 4부 가운데 1부 ‘공자의 지식철학’(상·중·하)과 2부 ‘서양의 지식철학’(상·하)이 먼저 나왔다. 지은이는 조만간 나머지 3부(‘공자의 덕치철학’)와 4부(‘맹자의 혁명철학’)도 완성해 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부와 2부 다섯 권 만으로 200자 원고지 1만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인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은 공자의 정치철학을 새롭게 재해석해 동서고금의 주요 철학 사상들과 비교한 뒤 공자사상을 우리 시대의 대안적 보편사상으로 제출하고자 하는 지적 야심을 깔고 있다.

지은이의 그런 생각은 ‘패치워크문명 시대의 공맹 정치철학’이라는 이 책의 부제에도 나타나 있는데, 패치워크라는 것은 헝겊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천을 뜻하는바, 우리말로는 ‘짜깁기’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문명은 ‘자기비판적 개방성’ 속에서 패치워크 형태로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근본 발상이다. 지은이는 동아시아 유교문명권이 세계 5대 문명권 중에서 자기비판성과 개방성이 가장 강한 문명권이며, 그 중심에 유교의 시조 공자(기원전 551~479·사진)가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지은이의 관심은 서구의 기독교문명에 맞서 동아시아 유교문명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데 있다. 유교문명이 기독교문명을 넘어 더 보편적이고 더 인간적인 문명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그렇다고 해서 지은이가 무작정 유교문명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근대 역사를 살펴보면 다른 문명을 적극 수용해 자기 문명을 재창조하는 데 먼저 성공한 것은 기독교문명이었다. 서구는 17~18세기에 동아시아 정신문명을 매우 적극적으로 수용해 계몽주의의 꽃을 피웠다. 케네와 스미스가 공자의 ‘무위’ 사상을 수용해 ‘자유시장’ 원리를 제시하고, 볼테르가 ‘인’(仁) 사상을 받아들여 근대시민혁명의 이념을 제시한 것은 이 책의 많은 사례 가운데 일부다.

공자
공자

지은이는 중국에 파견된 선교사들을 통해 유럽으로 들어간 유교 사상이 이렇게 ‘패치워크 계몽사상’을 형성했으며, 이 계몽사상이 18세기 말 시민혁명을 거쳐 서구 기독교 문명이 동아시아문명을 능가하게 만든 정신적 동력이 됐다고 말한다. 반면에 동아시아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그것이 ‘양이’(洋夷), 곧 서양 오랑캐라는 말 한 마디에 압축돼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서양이 승승장구하던 시기에 동아시아는 서양 사람들을 ‘서양 오랑캐’로 깔보고 문을 굳게 걸어 잠금으로써 이 지역을 “거대한 ‘지리산 청학동’”으로 만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오늘날 동아시아 혹은 한국의 상황을 ‘무도동기’(無道東器)라는 말로 요약한다. 100년 전 서구 제국주의가 쇄도할 때 등장했던 ‘동도서기’(東道西器, 동양의 정신에 서양의 기술)를 패러디한 말이다. 동아시아는 지난 수십년 사이 산업과 기술에서 엄청난 속도로 서구를 따라잡아 ‘동기’(동양의 기술)를 이루었지만, ‘도’ 곧 정신은 찾아볼 수 없는 ‘무도’의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공자의 사상을 재해석하여 서구사상과 소통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지은이는 서구의 사상을 크게 대륙의 합리주의와 영·미의 경험주의로 나누어 합리주의를 비판하고 경험주의를 수용한다. 서양 사상의 주류였던 합리주의의 지성주의는 침략성과 파괴성을 본질적 특성으로 내장하고 있다고 지은이는 본다. 이 사상이 프랑스혁명-러시아혁명을 낳았고, 나치즘·파시즘의 반혁명의 뿌리가 됐으며, 20세기 인간살육·자연파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반면에 영국에서 발흥한 경험주의는 합리주의에 비해 훨씬 더 온건하고 겸손하며 중용적인 사상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 경험주의가 공자 철학의 인식론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지은이는 공자의 인식론을 ‘해석적 경험론’이라고 지칭하는데, 그것은 ‘경험’을 앞세우고 ‘생각’을 뒤로 하는 인식론적 태도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논어>의 첫 문장 “학이시습”(學而時習)에서부터 나온다. 지은이는 학이시습의 ‘학’은 단순히 배운다는 뜻이 아니라 ‘경험에서 배운다’는 뜻이라고 강조한다. 이성적 사유보다 경험적 지식을 앞세우는 것이 지은이가 해석하는 공자의 경험론인 셈이다. 그리하여 서구의 경험주의 사상과 연대하고 합리주의 사상과는 대결함으로써 공자철학을 오늘의 패치워크 사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지은이는 “이 패치워킹을 통해 리폼된 공자 철학”을 “공자주의(confucianism)”라고 부른다. 이 공자주의를 서양철학과의 대결·대화 속에서 체계화하는 작업이 이 저작인 셈이다. 지은이는 이 공자주의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명이 세계사적 헤게모니를 쥘 경우, 과거 서구 문명의 침략적 지성주의의 헤게모니가 아니라 덕행과 무위의 ‘덕성주의 헤게모니’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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