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데리다(1930~2004)
15년만에 김성도 교수가 재번역
꼼꼼한 주석·해제…원서 두배로
서양의 ‘로고스 중심주의’ 뒤집어
꼼꼼한 주석·해제…원서 두배로
서양의 ‘로고스 중심주의’ 뒤집어
〈그라마톨로지〉
자크 데리다 지음·김성도 옮김/민음사·4만원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1930~2004·사진)의 주저 <그라마톨로지>가 김성도 교수(고려대 언어학)의 노력으로 재번역됐다. 김 교수는 1996년에 데리다의 이 저서를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그러나 데리다 철학의 광대한 배경과 난해한 주장을 다 소화하지 못해, 김 교수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로 그쳤다. 옮긴이는 결국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미완의 번역 과제를 완수한다는 심정으로 사실상 다시 번역했다고 밝혔다. <그라마톨로지>는 2004년에 동문선 출판사에서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김웅권 옮김)라는 제목으로도 출간된 바 있다. 김 교수의 재번역판이 출간됨으로써 두 판본의 번역서를 비교해 가면서 읽어볼 수 있게 됐다. 이 번역판은 매우 꼼꼼한 옮긴이 주석과 해제를 달고 있다. 또 데리다 철학의 핵심 어휘 600여개를 뽑아 프랑스어·한국어·영어·독일어·이탈리아어·중국어·일본어 번역어 대조표를 만들어 부록으로 실었다. 데리다 철학에 관한 국내 연구 목록도 정리했다. 그리하여 이 번역판은 초판보다 분량이 300쪽 넘게 불어나 1000쪽 가까운 두꺼운 책이 됐다. 프랑스어 원서의 두배가 넘는 분량이다. 데리다 저술작업의 출발점이 된 ‘기적의 해’는 1967년이었다. 이해에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 <글쓰기와 차이> <목소리와 현상> 세권을 한꺼번에 출간하면서 ‘철학계의 혜성’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이후 2004년 췌장암으로 죽기까지 8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 이 수많은 저서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데리다의 대표작이 <그라마톨로지>다. 20세기 인문학의 가장 중대한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도 이 책이다. <그라마톨로지>는 에크리튀르·해체·차연·대리보충 같은 데리다의 서명이 담긴 여러 독창적 개념어들이 처음 출현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말이 ‘에크리튀르’라는 단어다. 무려 1000번이 넘게 사용되는 이 단어는 이 책의 주제를 요약하는 말이기도 하다. 에크리튀르는 사전상으로는 문자·글쓰기·문체를 뜻하는 말인데, 이 책에서는 특히 ‘음성언어’와 대비하여 ‘문자언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라마톨로지’란 에크리튀르를 다루는 학문, 곧 문자학을 뜻하는 신조어다.
이 책은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를 대비시켜 서양 형이상학의 2000년 역사가 음성언어 중심의 역사였음을 밝히고 그런 규명을 통해 서양 형이상학의 토대를 해체하는 작업을 목표로 삼는다. 서양 형이상학의 일반적인 인식은 음성언어가 1차 언어이며 문자언어는 그 언어를 대리하고 보충하는 2차 언어라는 것이다. 데리다는 그것을 음성언어 중심주의, 다른 말로 로고스 중심주의라고 부른다. 소크라테스가 글을 쓰지 않고 제자들 혹은 시민들 앞에서 말로써 대화했던 것, <신약성서>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셨다”라고 한 것은 음성언어의 1차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데리다는 이 책에서 그 인식을 반대로 뒤집는다. 음성언어 이전에 문자언어 곧 에크리튀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당대에 밝혀진 분자생물학의 디엔에이 염기구조나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일종의 문자로 돼 있다는 점에 주목해 문자의 보편성을 발견해내는 데 더해, 선사인류학의 도움을 받아, 음성언어를 상용하기 이전에 사람의 표정을 읽고 자연의 변화와 하늘의 별자리를 독해하던 원시인류의 삶에서 문자언어의 1차성을 찾아낸다. 그는 이 원시의 문자를 ‘원문자’라고 부른다. 이렇게 문자언어의 선차성을 규명함으로써 로고스 중심주의를 해체하는 것이 이 책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해체라는 말 자체에 있다. 데리다 하면 곧 해체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고, 이 책이 그 해체의 철학을 세운 저작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작 <그라마톨로지>에서 데리다는 ‘해체’라는 말을 아홉번밖에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의 전체 전략은 해체라는 철학방법에 복무하고 있고, 그런 만큼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해체라는 말이다. 데리다가 사용하는 해체라는 말은 단순히 대상을 분쇄하거나 철거한다는 뜻이 아니다. 텍스트의 내적 구조를 살펴 그 모순을 드러내는 것, 그런 모순을 안고 있는 텍스트의 무의식을 파헤치는 것이 해체다.
데리다는 이 책의 1부에서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를 택해 해체의 대상으로 삼는다. 소쉬르는 서양의 전통 형이상학과 마찬가지로 음성언어를 문자언어보다 자연적으로 더 우월한 것으로 보았다. 동시에 그는 모든 언어적 기호가 자의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기의(의미·내용)와 기표(문자·음성) 사이의 관계에 아무런 내적 필연성이 없고, 따라서 문자든 음성이든 모든 기호는 평등하게 자의적이다. 그렇다면 음성언어가 문자언어보다 본디 더 우월하다는 판단은 모순이다. 이런 분석 작업을 통해 소쉬르 텍스트의 내적 모순이 드러난다. 데리다는 이 책의 2부에서 장자크 루소의 <언어의 기원에 관한 시론>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그런 내적 모순을 드러내는 해체 작업을 행한다. 그 과정에서 루소가 문자언어를 음성언어의 ‘대리보충’으로 이해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자크 데리다 지음·김성도 옮김/민음사·4만원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1930~2004·사진)의 주저 <그라마톨로지>가 김성도 교수(고려대 언어학)의 노력으로 재번역됐다. 김 교수는 1996년에 데리다의 이 저서를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그러나 데리다 철학의 광대한 배경과 난해한 주장을 다 소화하지 못해, 김 교수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로 그쳤다. 옮긴이는 결국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미완의 번역 과제를 완수한다는 심정으로 사실상 다시 번역했다고 밝혔다. <그라마톨로지>는 2004년에 동문선 출판사에서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김웅권 옮김)라는 제목으로도 출간된 바 있다. 김 교수의 재번역판이 출간됨으로써 두 판본의 번역서를 비교해 가면서 읽어볼 수 있게 됐다. 이 번역판은 매우 꼼꼼한 옮긴이 주석과 해제를 달고 있다. 또 데리다 철학의 핵심 어휘 600여개를 뽑아 프랑스어·한국어·영어·독일어·이탈리아어·중국어·일본어 번역어 대조표를 만들어 부록으로 실었다. 데리다 철학에 관한 국내 연구 목록도 정리했다. 그리하여 이 번역판은 초판보다 분량이 300쪽 넘게 불어나 1000쪽 가까운 두꺼운 책이 됐다. 프랑스어 원서의 두배가 넘는 분량이다. 데리다 저술작업의 출발점이 된 ‘기적의 해’는 1967년이었다. 이해에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 <글쓰기와 차이> <목소리와 현상> 세권을 한꺼번에 출간하면서 ‘철학계의 혜성’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이후 2004년 췌장암으로 죽기까지 8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 이 수많은 저서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데리다의 대표작이 <그라마톨로지>다. 20세기 인문학의 가장 중대한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도 이 책이다. <그라마톨로지>는 에크리튀르·해체·차연·대리보충 같은 데리다의 서명이 담긴 여러 독창적 개념어들이 처음 출현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말이 ‘에크리튀르’라는 단어다. 무려 1000번이 넘게 사용되는 이 단어는 이 책의 주제를 요약하는 말이기도 하다. 에크리튀르는 사전상으로는 문자·글쓰기·문체를 뜻하는 말인데, 이 책에서는 특히 ‘음성언어’와 대비하여 ‘문자언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라마톨로지’란 에크리튀르를 다루는 학문, 곧 문자학을 뜻하는 신조어다.
〈그라마톨로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