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얼굴을 가진 빈곤>
천의 얼굴을 가진 빈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 빈익빈 부익부, 풍요 속의 빈곤, 양극화 같은 말들은 사회공동체 전체의 위기 징후인데도, 대다수 사람들에겐 ‘가난은 자기 탓’이란 논리가 더 익숙하다. 혹자에게는 부의 영속적 독과점을, 또다른 이들에겐 무관심과 무력감을 감추는 논리다. 오스트리아의 빈곤문제 전문가 2명이 함께 쓴 <천의 얼굴을 가진 빈곤>은 빈곤의 구조적 실체를 드러내고 ‘빈곤을 넘어 상생과 복지로 가는 방안들’을 제시한다.
현재 유럽연합에서만 8000만명이 빈곤선(평균소득의 60% 이하 수입) 이하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세상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할 정도로 재화가 넘쳐난다.” 부족함과 넘침은 절대적 기준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적 분배의 문제다. 10대 임신, 신분 스트레스, 폭력, 사회적 격리 등 부의 불평등에서 비롯한 사회병리현상들은 빈곤층뿐 아니라 중산층에게도 피해를 입힌다. 지은이들은 절약 논리와 희생을 강조하는 수사법을 멈추고, 빈곤 퇴치 수단과 재화가 충분하다는 사실에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상승 기회가 주어진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거짓신화”이며 “약자에게 이로우면 강자에게도 이롭다.”
지은이들은 당위적인 구호 대신, 빈곤자 면담과 연구 결과를 토대로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책방안에 초점을 맞춘다. 이주자들에게 간병인 자격 부여, 빈곤 당사자들의 정책 참여, 소셜뱅킹, 인격적 존중, 경제 교육, 세계화된 금융시장에 대한 세계화된 감시와 통제 등은 몇몇 사례다. 번역과 교열이 군데군데 깔끔하지 못한 상태로 나온 점이 아쉽다. 마틴 센크·미하엘라 모저 지음, 문병호·원당희 옮김/세상의거울·1만5000원.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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