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언어〉
〈과학의 언어〉
캐럴 리브스 지음·오철우 옮김/궁리·1만3000원 1984년 10월 26일, 미국 로마린다대학 병원의 레너드 베일리 박사가 선천성 심장 기형아에게 비비원숭이의 심장을 이식했다. 아기는 20일 만에 면역거부반응으로 숨졌다. 베일리 박사는 왜 무모한 시술을 감행했을까.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굴드는 ‘호몰로지’(Homology)라는 과학 용어가 의미상 혼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진화생물학은 유기체의 유사성을 호몰로지(상동)와 아날로지(상사)로 구분한다. 상동은 발생 기원과 기본 구조가 같은 기관이 달리 진화한 것을 말한다. 새의 날개와 짐승의 앞다리가 그렇다. 상사는 발생학적 기원은 다르지만 기능이 비슷하거나 같은 것이다. 새의 날개와 곤충의 날개가 그렇다. 그런데 분자 수준에서 계통발생을 연구하는 생화학자는 상이한 유기체에서 디엔에이(DNA) 염기쌍이 일정 수준 이상 일치하면 ‘호몰로지’라는 하나의 용어를 쓰는 게 문제였다. 과학언어는 전문가도 틀리게 하거나 때론 치명적 실수를 유발한다. 하물며 일반인들이야.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미국 언어학자가 쓴 <과학의 언어>는 “언어의 사용과 구성이 과학 활동에 관한 우리 개념들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준다. 시어가 그런 것처럼, 과학에도 고유 언어와 문법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나 해석도 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설명돼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성을 띨 수밖에 없다. 그래서 “훌륭한 과학자들은 그때그때 달라지는 언어의 속성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언어선택에 주의를 기울여왔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옮긴이가 “과학에 대한 맹신과 냉소를 극복하려면 과학의 언어사용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학의 수사에도 은유가 곧잘 쓰인다. 복잡한 개념이나 관찰이 불가능한 현상을 설명하는 모형으로 유용할 뿐 아니라, 알기 쉽게 다가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예컨대, 메탄(CH₄)의 분자구조를 1개의 ⓒ(탄소 원자)에 4개의 ⓗ(수소 원자)가 각각 직선으로 연결된 그림으로 표현한 것은 뛰어난 도식성에도 불구하고 “바깥쪽(전자)은 탱탱볼 같고 안쪽(핵)은 딱딱한 고무공 같은” 원자의 성질까지 보여주지는 못한다. “에이즈와 맞서 싸우는 전쟁에서 우리는 궁극적 무기인 백신을 개발해 적을 물리칠 것입니다”라는 문장은 어떤가. 이 은유는 인류가 결국 에이즈를 극복할 것이란 낙관적 태도 형성에는 도움이 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의학의 실패나 의료 불평등은 못 보게 한다. 나아가 “현대 군사무기의 정밀성과 군인의 전투력에 대한 믿음을 만들고 전쟁의 추악한 현실을 가린다.” 과학담론은 종종 기성 질서나 사회담론과 부딪치며 헤게모니를 다툰다. 17세기 갈릴레오의 지동설이 교회권력의 천동설과 충돌했고, 오늘날 유전공학은 그것이 생명윤리에 배척되기는커녕 생명에 유익하다는 것을 논증해야 한다. 갈릴레오가 가톨릭교회에 보낸 서한이나 디엔에이(DNA)의 이중나선형 구조를 파악한 제임스 왓슨의 대중 에세이는 천재 과학자들이 세상과 소통한 전형을 보여준다. 이 책은 애초 수업교재로 쓰인 까닭에 특정 주제를 파고들거나 유려한 문장을 뽐내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주제를 간명히 설명하고, 일일이 도움말과 실습과제를 실어 독자가 직접 자기 생각을 다듬어볼 수 있도록 했다. 완독한 뒤에는 과학책 읽기에 새로운 시야와 흥미가 생길 게 분명하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캐럴 리브스 지음·오철우 옮김/궁리·1만3000원 1984년 10월 26일, 미국 로마린다대학 병원의 레너드 베일리 박사가 선천성 심장 기형아에게 비비원숭이의 심장을 이식했다. 아기는 20일 만에 면역거부반응으로 숨졌다. 베일리 박사는 왜 무모한 시술을 감행했을까.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굴드는 ‘호몰로지’(Homology)라는 과학 용어가 의미상 혼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진화생물학은 유기체의 유사성을 호몰로지(상동)와 아날로지(상사)로 구분한다. 상동은 발생 기원과 기본 구조가 같은 기관이 달리 진화한 것을 말한다. 새의 날개와 짐승의 앞다리가 그렇다. 상사는 발생학적 기원은 다르지만 기능이 비슷하거나 같은 것이다. 새의 날개와 곤충의 날개가 그렇다. 그런데 분자 수준에서 계통발생을 연구하는 생화학자는 상이한 유기체에서 디엔에이(DNA) 염기쌍이 일정 수준 이상 일치하면 ‘호몰로지’라는 하나의 용어를 쓰는 게 문제였다. 과학언어는 전문가도 틀리게 하거나 때론 치명적 실수를 유발한다. 하물며 일반인들이야.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미국 언어학자가 쓴 <과학의 언어>는 “언어의 사용과 구성이 과학 활동에 관한 우리 개념들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준다. 시어가 그런 것처럼, 과학에도 고유 언어와 문법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나 해석도 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설명돼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성을 띨 수밖에 없다. 그래서 “훌륭한 과학자들은 그때그때 달라지는 언어의 속성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언어선택에 주의를 기울여왔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옮긴이가 “과학에 대한 맹신과 냉소를 극복하려면 과학의 언어사용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학의 수사에도 은유가 곧잘 쓰인다. 복잡한 개념이나 관찰이 불가능한 현상을 설명하는 모형으로 유용할 뿐 아니라, 알기 쉽게 다가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예컨대, 메탄(CH₄)의 분자구조를 1개의 ⓒ(탄소 원자)에 4개의 ⓗ(수소 원자)가 각각 직선으로 연결된 그림으로 표현한 것은 뛰어난 도식성에도 불구하고 “바깥쪽(전자)은 탱탱볼 같고 안쪽(핵)은 딱딱한 고무공 같은” 원자의 성질까지 보여주지는 못한다. “에이즈와 맞서 싸우는 전쟁에서 우리는 궁극적 무기인 백신을 개발해 적을 물리칠 것입니다”라는 문장은 어떤가. 이 은유는 인류가 결국 에이즈를 극복할 것이란 낙관적 태도 형성에는 도움이 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의학의 실패나 의료 불평등은 못 보게 한다. 나아가 “현대 군사무기의 정밀성과 군인의 전투력에 대한 믿음을 만들고 전쟁의 추악한 현실을 가린다.” 과학담론은 종종 기성 질서나 사회담론과 부딪치며 헤게모니를 다툰다. 17세기 갈릴레오의 지동설이 교회권력의 천동설과 충돌했고, 오늘날 유전공학은 그것이 생명윤리에 배척되기는커녕 생명에 유익하다는 것을 논증해야 한다. 갈릴레오가 가톨릭교회에 보낸 서한이나 디엔에이(DNA)의 이중나선형 구조를 파악한 제임스 왓슨의 대중 에세이는 천재 과학자들이 세상과 소통한 전형을 보여준다. 이 책은 애초 수업교재로 쓰인 까닭에 특정 주제를 파고들거나 유려한 문장을 뽐내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주제를 간명히 설명하고, 일일이 도움말과 실습과제를 실어 독자가 직접 자기 생각을 다듬어볼 수 있도록 했다. 완독한 뒤에는 과학책 읽기에 새로운 시야와 흥미가 생길 게 분명하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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