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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라크전은 제국의 ‘군주’가 도발한 쿠데타

등록 2010-11-26 20:22

안토니오 네그리
안토니오 네그리
‘아우토노미아 운동’ 네그리가
25년 탄압 벗고 다닌 강연 36건
‘제국과 다중’이론 확장등 담아
〈네그리의 제국 강의〉
안토니오 네그리 지음·서창현 옮김/갈무리·1만9000원

안토니오 네그리(사진)는 급진적 반자본주의 해방운동인 ‘아우토노미아’(자율) 운동의 창설자이자 주도자다. 그는 21세기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와 그 내용을 독자적 이론으로 설명한 <제국>(2000)과 <다중>(2004)으로 유럽을 넘어 전세계로 알려진 대중적 지식인이 됐다. <네그리의 제국 강의>는 <다중>을 발간한 2004년 전후 1년 반 동안 유럽 여기저기를 여행하면서 행한 강연 내용을 묶은 책이다.

네그리에게 유럽 여행은 오랫동안 삶을 옥죄던 족쇄에서 그가 마침내 풀려났음을 뜻하는 개인적 사건이기도 했다. 1933년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태어난 네그리는 파도바대학 교수로 일하면서 노동자들의 급진적인 변혁운동에 참여했다. 실천운동 속에서 아우토노미아 사상을 발전시키던 네그리는 1979년 알도 모로 이탈리아 총리 납치살해 사건에 관여한 테러리스트의 수괴라는 조작된 죄목으로 체포·투옥됐다. 1984년 프랑스로 망명해 당시 루이 알튀세르와 질 들뢰즈의 도움으로 파리8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쳤다. 1997년 이탈리아로 돌아간 네그리는 다시 수감됐다가 풀려나 가택연금 생활을 했다. 13년의 망명 생활, 12년의 수감·연금을 포함해 모두 25년을 부자유의 상태로 살았던 그는 2003년 4월에 자유의 몸이 됐다. 여권을 받은 직후부터 이듬해 말까지 지구 두 바퀴에 해당하는 거리를 옮겨 다니며 강연했는데, 그중 36건의 강연 내용이 <네그리의 제국 강의>에 담겼다.

이 책은 제목이 말하는 대로 네그리 자신을 지식 스타로 띄워 올린 <제국>과 <다중>에 대해 강의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단순한 내용 설명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이론을 부연하고 확장하고 새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제국’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국과 ‘다중’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좀더 명료하게 밝힌다. 네그리의 이론을 쉽게 이해하려면, 제국이라는 것에 대해 먼저 뚜렷한 윤곽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 네그리의 제국은 고대사에서 빌려온 개념이다. 아우구스투스가 열어젖혀 이후 수백년 동안 고대 지중해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제국’이 네그리 제국의 모델인 셈이다. 로마제국의 영토가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돼 더는 외부가 없는 단일한 전체가 된 것이 네그리가 말하는 제국이라고 할 수 있다. 네그리는 이런 제국이 1989년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가 이 제국으로 이행·변모하고 있다고 말한다.

네그리는 제국의 구조도 로마제국의 지배구조와 유사한 형태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현재의 제국은 로마제국처럼 군주제(황제)와 귀족제(원로원)의 혼합체제로 이루어져 있다. 거기에 피지배층의 저항이라는 민주주의적 힘이 가세해 현재의 제국은 군주제·귀족제·민주주의라는 세 힘의 교합과 갈등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 여기서 군주의 역할을 하는 것이 미국이다. 군주세력 미국은 군사적·화폐적·문화적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있다. 네그리는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 지역적 지배력을 지닌 국민국가들, 그리고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 같은 초국적 경제기구들이 제국의 귀족들이며 이들이 미국이라는 군주의 하위 파트너로 원로원을 구성한다고 본다. 제국은 군주와 귀족이 힘을 합쳐 공동으로 관리한다. “어떤 국민국가도, 심지어는 미국조차도 이 제국을 일방적으로 통치할 수 없다.” 네그리는 이 군주세력과 귀족세력이 개별 국민국가 차원의 주권을 넘어 제국적 주권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이 제국적 주권은 일종의 권력 네트워크, 중심 없이 분산된 네트워크다.


〈네그리의 제국 강의〉
〈네그리의 제국 강의〉
이 제국의 지배 아래서 제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주체가 바로 다중이다. 다중이란 제국 시대의 전 지구적 프롤레타리아트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네그리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피지배자들의 저항이 승리한 결과로 제국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1918년에 시작돼 1989년에 끝난 20세기는 말하자면 일종의 거대한 내전의 시기였다. 자본가계급과 프롤레타리아계급 사이의 그 싸움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승리했고, 그 결정적 전환점이 68혁명이었다. ‘공장 안의 컨베이어벨트’로 대표되는 포드주의적 착취 시스템이 붕괴하고,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지식·정보 시대의 ‘비물질노동’이 주도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이 등장했다. 전 지구적 차원의 그런 변화된 조건에서 탄생한 것이 다중이라고 네그리는 말한다. 이 다중은 제국의 실질적 구성원이자 제국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낼 주체이기도 하다. 그 다중은 단순히 한 덩어리의 집단적 힘으로 이해되던 과거의 민중이나 계급과 달리 각자의 ‘특이성’을 간직한 채로 ‘공통성’을 창출하는 존재다.

이 책에서 네그리는 2003년 조지 부시가 강행한 이라크 전쟁을 ‘제국적 질서 안에서 군주세력이 도발한 일종의 내부 쿠데타’라고 설명한다. 부시가 ‘짐이 곧 제국이다’라고 허풍치며 밀어붙인 것이 이라크 전쟁이라는 쿠데타였다. 그 쿠데타는 처절한 패배로 끝났다. 네그리의 이론을 따른다면, 그 패배의 후유증으로 미국은 지금 제국 안에서 군주적 지위를 더욱 빨리 잃어가고 있다고 할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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