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무지개
진화의 무지개
생명체의 기원과 변화를 설명하는 가장 과학적인 이론이 진화생물학이라는 데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화생물학의 출발점이자 주춧돌인 진화론은 양성생식 동물의 종 번식을 ‘성 선택’ 이론으로 설명한다. 여성(암컷)은 새끼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가장 우수한 유전자를 지닌 남성(수컷)을 선택하며, 따라서 수컷들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끊임없이 투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선택설은 젠더를 남성(수컷)·여성(암컷)으로 고정함으로써, 동성애·양성애·트랜스젠더·간성 등 성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진화의 무지개>는 이분법적 젠더 모델의 오류를 지적하고, 성적 다양성이야말로 진화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미국 스탠퍼드대 생물학 교수이자, 52살에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이다. 성선택 이론에 따르면, 한 종 안에 여러 젠더가 있다면 번식능력이 열등한 젠더나 번식이 불가능한 동성애는 진화 과정에서 도태돼야 한다. 그러나 동물세계에는 성이 바뀌는 물고기, 음경이 달린 암컷 하이에나 등 성적 다양성이 놀라울 정도다. 그런데 인간사회에선 문화·종교·정치권력 등의 영향으로 이성애가 ‘정상’으로 자리잡으면서, 암수 분류에서 벗어나는 성적 다양성에 ‘비정상’이란 낙인을 찍고, 격리와 치료의 대상으로 접근한다. 지은이는 젠더 무지개의 다양한 색깔을 남녀 두 가지 색으로 ‘정화’하려는 시도가 나치즘의 우생학과 다를 게 없다고 경고한다. 그 세계야말로 다양성을 통한 진화를 거부하는 디스토피아다. 조안 러프가든 지음·노태복 옮김/뿌리와이파리·3만3000원.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