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휴전〉
20세기 문명이 만들어낸 가장 참혹한 야만의 동의어가 된 아우슈비츠. 프리모 레비(1919~1987)는 반파시즘 투쟁을 하다 독일군에게 붙잡혀 1944년 2월 그 아우슈비츠-지옥으로 가는 화물열차에 실린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이탈리아에서 폴란드까지 실려간 그는 1945년 1월 풀려날 때까지 열 달 동안 인간성이 짓이겨지고 말살당하는 최악의 시간을 견뎌낸다. 그렇게 살아남은 그가 1947년 발표한 것이 증언 문학의 한 경지를 열어젖힌 레비의 대표작 <이것이 인간인가>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나 자신을 완전한 작가로 느끼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 쓴다는 체험, 무에서의 창조, 올바른 말을 찾고 발견하는 일, 균형 잡힌 표현력이 넘치는 어떤 문장을 만들어내는 일은 너무나도 강렬하고 행복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또다시 그런 시도를 하고 싶어졌다.” <휴전>은 이런 견딜 수 없는 창조 열망 속에서 집필한 그의 또다른 대표작이다. 1963년에 펴낸 이 작품은 <이것이 인간인가>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인가>가 아우슈비츠에서 펼쳐지는 지옥의 여정을 단테의 <신곡>에 빗대어 보여준다면, <휴전>은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된 순간부터 고향 토리노로 돌아오기까지 아홉 달에 걸친 긴 여정을 <오디세이아>에 빗대어 펼친다. ‘작가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 <이것이 인간인가>가 참혹한 지옥 체험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데 역점을 두었던 것과 달리 15년 뒤에 쓴 <휴전>은 좀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귀환의 길에서 겪은 기괴한 체험들을 문학적으로 정밀하게 계산한 필치로 그려낸다. 이소영 옮김/돌베개·1만4000원.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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