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톨스토이 세상뜬 지 100년 되는 해
내면의 모순과 역설 찬찬히 살펴
내면의 모순과 역설 찬찬히 살펴
〈톨스토이〉
앤드루 노먼 윌슨 지음·이상룡 옮김/책세상·3만8000원 올해는 소설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가 세상을 뜬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영국의 저술가 앤드루 노먼 윌슨이 쓴 <톨스토이>는 19세기 러시아가 낳은 이 문학적 거인의 82년에 이르는 삶을 찬찬히 살핀 전기다. 지은이는 냉정한 묘사의 메스로 톨스토이의 내면과 생활을 절개해 보여줌과 동시에 작가라는 위상을 넘어 사상가·종교인·구도자로서 그의 위대함이 형성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 보여준다. 지은이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은 ‘탕자에서 성자로’ 긴 시간에 걸쳐 거듭난다. 그리고 그 두 가지 극단적 존재 방식 사이에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라는 불후의 걸작을 쓴 작가 톨스토이가 놓인다. 이 전기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톨스토이의 삶에 내재한 모순과 역설이다. “이 작가의 삶은 온갖 모순과 의혹으로 가득 차 있다. 톨스토이에 관한 역설은 셀 수 없이 많다.” 지은이는 단적인 사례로 톨스토이에 대한 서구 문학의 영향을 든다. “러시아 작가들 중에서 가장 러시아적 특성”이 강했던 톨스토이는 러시아 작가들이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작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작품을 쓸 때마다 그는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작품들을 먼저 읽고 집필의 동력을 얻었다. 그는 러시아 농민들과 더불어 살았으나, 그의 정신을 형성한 것은 서유럽의 사상이었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 사상가 장 자크 루소를 10대 소년 시절에 읽기 시작해 평생 숭배했다. 또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의 사상은 톨스토이의 아나키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톨스토이의 일생은 두 혁명적 사건 사이에 놓여 있다. 그는 1825년 12월당(데카브리스트) 반란 3년 후에 태어나 1917년 10월혁명 7년 전에 죽었다. “마치 그는 1825년 12월 혁명과 1917년 10월 혁명이라는 두 혁명 사이에 누에고치처럼 갇혀 버린 꼴이었다.” 19세기를 온통 반역과 저항으로 흔들어 놓을 혁명적 운동의 출발점이었던 데카브리스트 반란은 최종적으로 20세기 벽두에 터진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귀결했다. 그 두 거대한 사건 사이에서 살다간 톨스토이는 자기 내부에 러시아의 격동과 갈등을 응축시키고 있었다. 그는 체르니셰프스키 같은 급진 혁명가들과도 생각이 달랐고 투르게네프 같은 자유주의자들과도 거리를 두었지만, 이들의 사상을 나름대로 흡수해 톨스토이식 민중주의로 발효시켰다.
가난하고 순박한 농민들 속에서 안식처를 발견하고자 했던 톨스토이는 19세기 러시아 위대한 작가들 가운데 계급이 가장 높은 귀족 출신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공작의 딸이었고, 아버지는 백작이었다. 톨스토이의 삶에서 특히 어머니 혈통은 근원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의 삶의 터전이었던 영지와 저택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톨스토이의 저택 ‘야스나야 폴랴나’(‘숲속의 밝은 터’라는 뜻)가 있었다. 어머니는 볼콘스키 공작의 외동딸이었다. 공작이 죽은 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영지와 농노와 저택을 지참금으로 삼아 톨스토이 백작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다섯 아이를 낳았고, 레프 톨스토이는 그 중 넷째였다. 어머니는 레프가 두 살 때, 아버지도 레프가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났다. 레프는 19살이 됐을 때 부모의 유산을 받았는데, 당시의 관습대로 막내아들인 그에게 부모가 살던 저택과 영지가 할당됐다.
톨스토이의 내적 모순 가운데 가장 격렬했던 것은 ‘탕자와 성자’ 사이의 모순일 것이다. 그의 내부에서 탕자와 성자는 쉴 새 없이 으르렁거리며 싸웠고, 특히 젊은 시절 내내 탕자는 날뛰는 말처럼 톨스토이의 정신과 육체를 짓밟았다. 10대 청소년기에 정욕의 세계에 눈을 뜬 톨스토이는 끝없는 색탐으로 정열을 낭비했다. 술과 도박과 여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세월이었다. 그런 방탕중에 19살 톨스토이는 성병에 걸렸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평생동안 계속될 습관의 시작이었다. 그 일기에 그는 이렇게 썼다. “만약에 내가 유용한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한다면 나는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것이다. (…) 나는 내 온 생을 걸고 소중한 삶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탕자의 방황은 쉬 끝나지 않았다. 1851년 군대에 들어간 것은 이런 어지러운 삶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의 소산이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군대에 있던 5년 동안 톨스토이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862년 서른네 살의 톨스토이는 베르스 가문의 둘째딸 소피아와 결혼한다. 이 결혼은 톨스토이에게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라는 러시아 문학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을 쓸 정신적 안정을 주었다. 그러나 그 결혼은 뒤로 갈수록 격렬해질 불화, “결혼의 역사에서 다른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증오가 가득한 가정 불화”의 시작이기도 했다.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하고 난 뒤, 1878년 영적인 각성을 한 쉰 살의 톨스토이는 새로운 종교적 삶으로 난 길을 걷는 구도자가 되고, 마침내는 성자의 위엄을 얻게 된다고 이 전기는 말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앤드루 노먼 윌슨 지음·이상룡 옮김/책세상·3만8000원 올해는 소설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가 세상을 뜬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영국의 저술가 앤드루 노먼 윌슨이 쓴 <톨스토이>는 19세기 러시아가 낳은 이 문학적 거인의 82년에 이르는 삶을 찬찬히 살핀 전기다. 지은이는 냉정한 묘사의 메스로 톨스토이의 내면과 생활을 절개해 보여줌과 동시에 작가라는 위상을 넘어 사상가·종교인·구도자로서 그의 위대함이 형성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 보여준다. 지은이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은 ‘탕자에서 성자로’ 긴 시간에 걸쳐 거듭난다. 그리고 그 두 가지 극단적 존재 방식 사이에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라는 불후의 걸작을 쓴 작가 톨스토이가 놓인다. 이 전기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톨스토이의 삶에 내재한 모순과 역설이다. “이 작가의 삶은 온갖 모순과 의혹으로 가득 차 있다. 톨스토이에 관한 역설은 셀 수 없이 많다.” 지은이는 단적인 사례로 톨스토이에 대한 서구 문학의 영향을 든다. “러시아 작가들 중에서 가장 러시아적 특성”이 강했던 톨스토이는 러시아 작가들이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작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작품을 쓸 때마다 그는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작품들을 먼저 읽고 집필의 동력을 얻었다. 그는 러시아 농민들과 더불어 살았으나, 그의 정신을 형성한 것은 서유럽의 사상이었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 사상가 장 자크 루소를 10대 소년 시절에 읽기 시작해 평생 숭배했다. 또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의 사상은 톨스토이의 아나키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톨스토이의 일생은 두 혁명적 사건 사이에 놓여 있다. 그는 1825년 12월당(데카브리스트) 반란 3년 후에 태어나 1917년 10월혁명 7년 전에 죽었다. “마치 그는 1825년 12월 혁명과 1917년 10월 혁명이라는 두 혁명 사이에 누에고치처럼 갇혀 버린 꼴이었다.” 19세기를 온통 반역과 저항으로 흔들어 놓을 혁명적 운동의 출발점이었던 데카브리스트 반란은 최종적으로 20세기 벽두에 터진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귀결했다. 그 두 거대한 사건 사이에서 살다간 톨스토이는 자기 내부에 러시아의 격동과 갈등을 응축시키고 있었다. 그는 체르니셰프스키 같은 급진 혁명가들과도 생각이 달랐고 투르게네프 같은 자유주의자들과도 거리를 두었지만, 이들의 사상을 나름대로 흡수해 톨스토이식 민중주의로 발효시켰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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