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잠깐독서 /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조선 밖 세상을 구경하기 어려웠던 선비들에게 글은 ‘세상’이었을 것이다. 선비들은 글을 통해 과거의 지식과 접속했고, 집 안팎의 삶과 사물을 보며 깨친 이치도 글로 옮겼다.
18세기 명문 풍양 조씨의 후손 조귀명도 귀 기울일 만한 비평을 많이 남겼다. 그는 집에 걸린 그림을 보고 “공경대부의 집 안 벽에는 대부분 산간의 촌락이나 들판의 별장에 은둔하면서 고기 잡고 나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눈으로 보면 즐겁지만 직접 살아보면 근심스러운 법이니, 어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일갈했다. 은자인 양 시골 농부의 삶을 부러워하지만 벼슬을 꿈꿨던 당시 사대부의 위선적인 의식을 꼬집은 것이었다. 또 조선의 대표적 문신이었던 채제공은 자신의 병구완을 위해 ‘지렁이탕’을 권한 친구에게 답하며 ‘생명 존중’ 사상을 드러낸다. “저 허다한 생명을 죽인 다음 불로 익히고 녹여서 효험이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지렁이로서는 너무나도 불행한 일 아니겠소?” 그는 “터럭만큼이라도 이익이 있다면”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세태를 한탄하며, 지렁이탕이 “남을 해쳐 나를 이롭게 한다는 점에서 그 마음이 똑같소”라고 했다.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는 조선 선비의 사유와 지혜를 담은 옛글 43편을 모았다. 찬찬히 따라가면 지금은 잊혀진 서울의 옛 지명도 만나고, 당시의 풍속들도 유추할 수 있다. 서울대 이종묵 국문과 교수가 쉽게 풀어 썼고, 옛 그림과 원문도 담아 이해를 돕는다. ‘탁족’으로 더위를 이겨냈던 선비처럼, 계곡물에 두 발 담그고 한 구절씩 읽기에 좋다. /김영사·1만3000원.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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