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을 따서 가락을 빚다〉
잠깐독서 /
〈풀잎을 따서 가락을 빚다〉
산과 들에 어지럽게 자라는 풀잎이나 나뭇잎, 나뭇가지 껍질을 입으로 불면 풋풋한 소리를 내며 훌륭한 가락이 된다. 입안에 가득 공기를 넣었다가 훅 불면 ‘삐’ 하는 제법 큰 소리가 난다.
<풀잎을 따서 가락을 빚다>는 풀피리를 전통음악의 관점에서 바라봤다. 풀피리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풀피리의 기원, 재료와 모양, 제작법과 연주법을 자세히 실었다. 풀피리는 초금과 호들기가 대표적이다. 초금은 나뭇잎을 양손으로 잡은 뒤 아랫입술에 대고 연주하는 것이고, 호들기는 버드나무 껍질을 벗긴 뒤 한쪽 끝에 겹서(리드)를 만들어 연주한다. 어린 원추리 잎과 사철나무 잎, 냇가에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와 수양버들의 가지 등이 대표적인 풀피리 재료다. 지은이는 20년 동안 우리나라 풀피리의 기원을 추적했다. 풀피리는 한국 음악사에도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악학궤범>에는 조선 초기 향악기로 사용되던 초적(초금)의 재료와 연주법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초적 항에 나뭇잎으로 연주하는 풀피리와 나무껍질을 말아 부는 도피필률을 모두 초적이라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풀피리 연주는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조선시대 서거정은 <필원잡기>에서 지중추인 홍일동이 거나하게 취하면 풀잎으로 적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비장하고 진려했다고 전한다. <연산군일기>에는 연산군이 후원에서 나인들과 놀면서 불의의 변고를 예감하고 직접 초적을 불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있다. 부록으로 딸린 시디에는 일제강점기 명인 강춘섭이 유성기 음반에 취입한 대표적인 풀피리 음악이 실려 있다. 이진원 지음/채륜·1만8800원.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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