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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폭력의 땅’에 대한 얼얼한 고발

등록 2010-07-02 18:59수정 2010-07-02 19:00

〈얼음꽃을 삼킨 아이〉
〈얼음꽃을 삼킨 아이〉
〈얼음꽃을 삼킨 아이〉
박향 지음/실천문학사·9500원

청소년기는 아프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질풍노도의 시기’는 세상과 나의 고통에 대해 처음으로 대면해야 하는 때인지 모른다. <얼음꽃을 삼킨 아이>의 주인공 수희는 큰언니 강희의 실연을 보며 너무 일찍 고통에 직면한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언니 강희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강희는 고등학교 선생님과 사랑에 빠졌다가 버림을 받는다. 이 사건은 어렸을 적 한때의 추억이라 하기엔 가족에게 큰 상흔을 남긴다. 뱃속에 든 아이까지 떼며 버림받은 강희는 자살을 시도한 끝에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딸을 마주하기 힘들었던 아버지는 낚시를 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주검이 되어 돌아온다. 강희 역시 재혼을 하지만 가정폭력에 시달린다. 어머니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공부 잘하는’ 아들 역시 대학에 가 ‘운동권’이 된 뒤 집과 연락이 끊긴다.

‘폭력의 땅’에 대한 얼얼한 고발
‘폭력의 땅’에 대한 얼얼한 고발

학교와 가정에서 벌어지는 이런 폭력적인 사건들을 보며 성장한 수희는 남성적 질서에 대한 분노와 혐오를 품는다. 수희는 같은 반 동기였던 현성이가 ‘너를 좋아한다’라는 편지를 썼을 때 그 편지를 찢어버린다. “사랑한다는 말은 나를 폭행하여 깔아뭉개고 시궁창에 버리겠다는 말이었다”고 그는 되뇐다. 결국 수희는 큰언니를 이렇게 만든 배도연 선생을 학교에서 다시 맞닥뜨리고 치밀한 복수를 꿈꾼다. 복수 뒤 자신까지 함께 피해자가 될지 모른 채 말이다.

동화작가 이현씨는 추천사에서 “1970년대를 복원해낸 시대적 배경 속에서 ‘얼음꽃을 삼킨 아이’가 스무살이 될 때까지 겪어낸 시간들은 한 소녀의 아픈 성장담이자 폭력의 땅 위에 세워진 우리 현실에 대한 르포”라고 분석했다. 곧 1970년대 개발독재 시기에 학교와 가정이 얼마나 무서운 곳일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이다. 기존의 계몽적인 책이나 ‘꽃보다 남자’와 같은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청소년에게는 사뭇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읽은 뒤엔 마치 얼음을 삼킨 것처럼 목 안이 얼얼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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