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게릴라〉
도시·기술·예술 등 관심분야 넓었던
20세기 ‘르네상스인’ 루이스 멈퍼드
박홍규 교수가 국내 최초로 분석해
20세기 ‘르네상스인’ 루이스 멈퍼드
박홍규 교수가 국내 최초로 분석해
〈메트로폴리탄 게릴라〉박홍규 지음/텍스트·1만4000원
박홍규 영남대 교수가 쓴 <메트로폴리탄 게릴라>는 20세기 미국의 전방위 지식인 루이스 멈퍼드(1895~1990·사진) 전기다. 국내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멈퍼드라는 예외적인 인간의 삶과 사상을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주는, 한국어로 된 첫 책이다. 지은이는 멈퍼드가 27살 때 쓴 첫 저작 <유토피아 이야기>도 번역해 이 전기와 함께 펴냈다. 플라톤의 유토피아에서부터 현대의 유토피아까지 2500년 유토피아 사상사를 개괄하는 책이자 뒷날 만개할 멈퍼드 사상의 싹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책이 <유토피아 이야기>다.
지은이는 멈퍼드를 ‘모든 거대한 것에 저항한 사람’이었다고 요약한다. 거대도시·거대기계·거대예술·거대이념이 모두 멈퍼드의 적이었다. 거대한 것은 왕이나 권력자나 자본가 같은 거대인간들이 추구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모든 거대는 추악하다고 멈퍼드는 생각했다. 멈퍼드는 거대한 것의 반대편에 소박한 것을 놓았다. 소박한 것이 아름답다고 그는 주장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멈퍼드의 저작은 거대한 것을 맹목적으로 찬양하고 추구하는 우리 시대의 거대신화를 해체하고 무너뜨리는 데 사상적 무기를 제공해준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멈퍼드는 다방면의 지식을 두루 섭렵한, 그리고 그 모든 분야에서 독창적인 업적을 남긴 사람이었다. 그는 20세기 최초의 도시연구자·도시사학자였고 건축비평가였으며, 문학·예술 전반에 대해 글을 쓴 문예비평가였고, 인류의 역사를 문명사적 차원에서 조망한 문명비평가였다. 그렇게 넓은 지적 시야를 그는 ‘주경야독’의 삶을 통해 확보했다. 가난한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난 멈퍼드는 뉴욕 한가운데 맨해튼에서 자랐다. 기술고등학교를 졸업한 멈퍼드는 17살 때 뉴욕시립대 야간부에 입학했다. 등록금이 싸다는 이유로 택한 곳이었는데, 그는 그곳을 2학년까지 다니고 중퇴했다. 이때부터 그는 독학으로 사상의 지평을 넓혀나가기 시작했다.
22살 때 그는 평생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로 살겠다는 결심을 한다. <유토피아 이야기> 서문에서 그는 제너럴리스트라는 말을 이렇게 정의한다. “제너럴리스트는 개별적인 부분을 상세히 연구하기보다 그러한 파편들을 질서 있고 의미 있는 패턴 속에 통합하는 것에 더욱 흥미를 느끼는 사람을 말한다.” 지은이는 이 제너럴리스트를 ‘르네상스적 전인’이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멈퍼드의 모델이 되었던 것이 미켈란젤로나 다빈치 같은 르네상스인들이었고, 멈퍼드의 이후 삶이 그런 사람들과 유사한 전인적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너럴리스트가 ‘파편들을 패턴 속에 통합하는’ 사람인 이상 ‘일관된 사상의 틀’이 있다는 뜻일 터인데, 지은이는 멈퍼드에게 그런 틀 구실을 한 것이 ‘아나키즘’이었다고 말한다. ‘자유로운 개인이 분권적 지역 자치 안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삶’을 일관성 있게 지향했다는 것이다. 거대주의에 대항해 소박주의를 주장하고 집권주의에 대항해 분권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아나키스트 멈퍼드의 모습이었다. 멈퍼드의 아나키즘은 여러 경로를 통해 형성되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먼저 미국 문학 속에서 랠프 월도 에머슨, 너새니얼 호손,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트 휘트먼이 멈퍼드의 스승 노릇을 했다. “나는 강제당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 숨을 쉰다.” 소로의 이런 독립·자유의 명제는 그대로 멈퍼드 자신의 것이 되었다. 또 영국의 문예비평가 존 러스킨과 윌리엄 모리스의 아나키즘 사상이 그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표트르 크로폿킨의 저술들은 직접적으로 아나키스트 정신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이 모든 흐름을 받아들여 멈퍼드적 아나키즘 사상으로 종합했다.
이 전기는 멈퍼드의 삶을 시간순으로 따라가면서 그의 사상 또는 저작을 횡적으로 살핀다. 1장 ‘자유’에서 시작해 대학·이상·지역·문화·기술·도시·인간·예술·역사·기계·권력을 거쳐 13장 ‘자연’으로 끝낸다. 하나하나가 다 멈퍼드의 관심사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중 특별히 그의 관심을 끌었던 분야가 기술과 도시다. 그는 이 영역을 다룬 책 <기술과 문명>(1934), <도시와 문화>(1938)를 쓴 뒤, 다시 저작들을 확장해 <역사 속의 도시>(1961)와 <기계의 신화>(전 2권, 1967~1970)로 펴냈다. 이 저작들에서 멈퍼드는 거대기술·거대도시를 비판하고 기술과 도시를 인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의 평생 관심사는 도시였는데, 그는 중세의 작은 도시들을 우리 시대의 거대한 ‘죽음의 도시’에 대비시켰다. 중세 도시들은 동업조합(길드)을 통한 상호부조의 인간관계가 유지되고 있었으며 농촌과 도시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중세 도시야말로 아나키즘적 자치 공동체의 ‘오래된 미래’였다.
멈퍼드는 1962년 뉴욕시에서 160㎞ 떨어진 시골 아메니아로 들어가 나머지 40년 삶을 소박한 목조 농가에서 보냈다. 1990년 1월 그는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아무 고통 없이 죽었다.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멈퍼드의 삶을 두고 ‘앎과 삶이 완벽하게 일치한 삶’이었다고 평가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루이스 멈퍼드(1895~1990)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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