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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교과서에 없는 조선시대 악사들

등록 2010-06-04 20:34수정 2010-06-04 20:39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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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

유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조선시대, 음악은 단지 듣고 즐기는 수단이 아니었다. ‘악’은 유교적 신분 질서와 예를 구현하는 ‘정치’의 일종이었다. 특히 왕실과 조정이 세심하게 관리한 궁중음악은 엄격한 예법에 따라 빈틈없이 짜여진 의식 그 자체였다고 한다. 조선은 이를 위해 전문 음악기관인 ‘장악원’을 만들었다. 일종의 국립 오케스트라였던 셈이다. 성종 때 편찬한 <경국대전>을 보면 아악 악사 2명, 악생 297명 등 981명이나 되는 음악인들이 이 기관에 속해 있었다. 뛰는 ‘행사’도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고 한다. 가장 큰 행사인 종묘제례를 매해 다섯 차례씩 지내야 했고, 왕실 정기 제사만 해도 일곱 차례였다. 사신 방문 등 크고 작은 일도 많았고, 매달 ‘2’와 ‘6’자가 들어가는 날은 정기 연습일로 지켜야 했다.

그렇다고 조선의 대표 ‘뮤지션’들의 살림살이는 괜찮았을까? 그렇진 않았던 것 같다. 신분사회인 조선에서 이들의 행위는 ‘예술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신역(의무)’의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당시 악공 월급은 한 달에 베 한 필뿐이어서 “거적을 치고 굶주림을 참으며 살아가는 형편”이라는 상소도 잇따랐다고 한다. 연주를 잘하는 사람은 그나마 궁 밖 잔치판에 불려가 부수입을 올리며 생계를 유지했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인 지은이는 우리가 국사책에선 배우지 못한 조선 악사와 악기의 이야기를 풍부한 삽화와 함께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에 풀었다. 명나라가 요구해 보낸, 노래를 하는 여자 ‘창가비’와 ‘아이돌’ 무동 이야기도 흥미롭다. 송지원 지음/추수밭·1만3500원.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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