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바보예찬〉
잠깐독서 / 〈헤이, 바보예찬〉 초지일관 ‘오버’하란다. 경솔·망각·쾌락·정욕을 좆고 미래의 희망이나 이성 따위는 헌신짝처럼 내던지란다.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듣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결혼의 불편함, 출산의 고통을 미리 세세하게 계산해본다면 누가 결혼의 멍에를 쓰려 하겠는가. 이때 빌려올 수 있는게 바로 ‘경솔의 힘’이다. 취해서 한 행동을 하나하나 다 기억한다면 어떻게 술을 마시겠는가. 집착하지 않는 삶은 망각 때문에 가능하다. <헤이, 바보예찬>은 부조리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는 혹은 적응하려는 온갖 노력들이 결국 현자인 척하는 어리석음에 현혹되고 속은 것이라 꼬집는다. 그들의 지식과 이념을 거부하고 인간본성에 내재해 있는 건강한 바보를 해방시켜 참된 인간의 삶을 구현하라 말한다. 앞서 말한 ‘오버’란 자아의 내면과 규격화된 가치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것쯤 되리라. 500년 전 에라스뮈스는 <우신예찬>을 통해 교회와 성직자의 위선을 까발렸듯 지은이는 ‘바보 여신’의 입을 빌려 사회제도 특히 자본주의와 21세기 물질문명의 허구성을 풍자한다. 예컨대 “(경쟁, 금욕 등에 강박당하고 있다면) 당신은 지식을 관장하는 이성에 충성하기 위해 자신의 전 존재를 시체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바보는 설명이 아니라 자신을 인정하는 파장으로,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로 모든 걸 해결한다”고. 글은 강연을 듣는 듯 구어체이고 간결하지만, 감을 잡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껍데기를 벗는 게 어렵다는 반증이다. 실크로드학을 연구하는 전방위 지식인 김영종씨가 쓴 에세이다. /동아시아·9000원.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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