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의 쇼핑〉
잠깐독서 / 〈르네상스 시대의 쇼핑〉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쇼핑은 단순히 구매 행위가 아니라 여가와 오락 활동이다. 대량생산된 상품의 대중적 소비는 근대적 특징이다. 1860년대 영국과 프랑스에 처음 등장한, 고정가격제를 내걸고 월급 점원을 고용한 백화점이 근대 쇼핑의 기원이라는 게 통설이다. 그러나 계몽시대의 급격한 소비자 증가 현상은 이미 15세기 이탈리아에서 태동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쇼핑>은 책의 부제대로 ‘1400~1600년 이탈리아의 소비자 문화’의 세밀한 풍경을 들여다본다. 르네상스는 새로운 문물이 폭발하는 열린 공간이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다양성과 경쟁을 통해 신상품들을 쏟아냈다. 중계무역항으로 번성한 베네치아는 도시민뿐 아니라 국외고객까지 상대했다. 이 시기 물품명세서들은 사람들의 소유물의 수와 종류가 급증했음을 보여준다. 쇼핑은 더는 집안 여자나 하인들이 떠맡는 하찮은 일이 아니었다. 16세기 말 상점을 열려는 베네치아인은 시 정부에 간판을 등록해야 했다. 간판은 물건 품질의 상징이었으며, 시는 간판 규제를 통해 상점과 상인을 통제하고 조세 수입을 확보했다. 특권계층의 쇼핑을 위한 법령도 등장했다. 베네치아 당국은 1507년 베레모 상인들의 호객 행위를 금지했으며, 1534년에는 “실재하고 틀림없는, 벽으로 둘러싸인 일상적인 상점”으로 매장 요건을 제한했다. 교회의 면죄부 판매는 공공연한 판매물품의 대상과 가격 결정에 대한 논쟁을 낳기도 했다. 풍부한 민속화와 사진들을 곁들인 이 책은 ‘쇼핑’을 열쇳말로 삼은 르네상스 시대의 풍속사에 가깝다. 에블린 웰치 지음·한은경 옮김/에코리브르·3만3000원.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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