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20년 지속된 하버드 명강의 엮어
숱한 ‘도덕적 딜레마’ 해결 지침서
숱한 ‘도덕적 딜레마’ 해결 지침서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이창신 옮김/김영사·1만5000원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57·미국 하버드대 교수)은 존 롤스(1921~2002) 이후 영어권 정치철학계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다. 27살에 하버드대 교수가 된 샌델은 29살 때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펴내 명성을 얻었다. 샌델은 이 책에서 롤스의 평등적 자유주의에 대응하여 ‘공동체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후 샌델은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마이클 월저, 찰스 테일러와 더불어 공동체주의 4대 이론가로 알려졌다. 샌델의 수업은 하버드대에서 가장 있기 있는 강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특히 그가 20년 넘게 계속하고 있는 ‘정의’(justice)라는 강의는 교수의 유창한 진행과 학생들의 열띤 참여로 하버드대 최고의 강의라는 명성을 얻었다. 2009년에 출간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지난 20여년 동안 수천명의 학생들과 함께했던 ‘정의’ 강의를 바탕으로 삼아 쓴 책이다. 통상의 정치철학서와 달리, 수많은 구체적인 사례를 실감나게 제시함으로써 ‘정의’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하여 이 책은 설득력 있는 사례들로 무장한 정치철학 입문서이자 샌델 자신의 견해를 비교적 분명하게 논증한 정치철학 이론서가 됐다. 철학적 고민은 둘 이상의 원칙이 서로 충돌할 때 그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이 죽어야만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은 도덕적 원칙이다. 동시에 사람의 생명을 가능한 한 많이 살려내는 것도 도덕적 원칙이다. 이 두 원칙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이 도덕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셈인데, 정치철학도 다르지 않다. 샌델의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딜레마를 다룬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57·미국 하버드대 교수)
샌델은 칸트와 롤스의 자유이론이 매우 설득력 있는 것이긴 하지만, ‘무엇이 좋은 삶이냐’에 대한 대답을 괄호로 묶어 놓은 채, 모든 사람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정의의 일반적 원칙만 이야기한다고 비판한다. 그리하여 샌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관으로 눈을 돌린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는 좋은 삶이라는 미덕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정치는 시민들에게 무엇이 좋은 삶인지 터득하게 해주는 것이다. “정치의 목적은 사람들이 고유의 능력과 미덕을 계발하게 만드는 것, 곧 공동선을 고민하고, 판단력을 기르며, 시민 자치에 참여하고,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걱정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미덕을 장려함으로써 좋은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정의다. 샌델은 오늘날 정의의 이론이 공동선의 정치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샌델이 보기에 196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로버트 케네디가 이런 공동선을 외쳤으나, 그가 암살당한 뒤 진보파가 이 문제를 놓아버렸다. 그랬던 것이 2008년 대선에서야 버락 오바마와 함께 공동선의 문제가 진보적 의제로 부활했다. 샌델은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의 진보 정치가 시민의 도덕적·정치적 신념을 존중한다면서 그 신념의 내용을 외면하고 모른 척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회피에서 나온 존중은 가짜이기 십상이다.” 샌델은 좋은 삶을 다 같이 고민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이라면서 정치가 개인들의 도덕적 판단과 실천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는 것이 결국에 공동선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는 (도덕을)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 찬 기반을 제공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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