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도시-광주민중항쟁과 제헌권력〉
폭도로 규정된 ‘벌거벗은 목숨들’
집단지성으로 새로운 질서 창조
신자유주의 지배하는 현재에도
주체적 공동체의 가능성 보여줘
집단지성으로 새로운 질서 창조
신자유주의 지배하는 현재에도
주체적 공동체의 가능성 보여줘
〈공통도시-광주민중항쟁과 제헌권력〉
조정환 지음/갈무리·1만2000원 5·18 광주민중항쟁 30돌을 앞두고 나온 조정환(사진)씨의 <공통도시-광주민중항쟁과 제헌권력>은 ‘아우토노미아’(자율) 이론가 안토니오 네그리의 개념을 빌려 ‘5월 광주’를 재해석하는 신선한 시도다. 아우토노미아 연구·운동 모임인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이기도 한 지은이는 이 책에서 광주민중항쟁을 “기념해야 할 기억 속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살아 움직이는 현재적 사건”으로 다룬다. 이런 현재화 작업에서 다중·제헌권력·공통도시라는 네그리적 개념이 새로운 해석의 열쇳말 구실을 한다.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지속된 광주 항쟁은 지은이의 해석 지평 안에서 ‘다중의 제헌권력이 출현한 사건’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제헌권력이란 정치질서의 근본 규칙을 새로 만드는 권력을 의미한다. 기존 체제가 붕괴했을 때 제헌의회를 열어 헌법을 새로 제정하는 것을 떠올리면, 제헌권력의 의미가 또렷해진다. 제헌권력이란 이렇게 기존 체제를 해체하여 새로운 체제를 만들고 새로운 규칙을 세우는 혁명적 권력이다. 5월 광주에서 이 제헌권력이 나타났다는 것인데, 그 권력의 주체를 지은이는 ‘다중’이라고 명명한다. 네그리의 개념장치 안에서 다중은 인민과 대립한다. 인민은 국가주권을 구성하는 집합체이지만, 다중은 이 주권의 바깥에서 “집단지성으로 결합하는 창조적 무리”이다. 지은이가 보기에 5월 광주는 국가주권, 곧 계엄사령부가 폭도라고 규정하여 국가 질서 바깥으로 축출한 ‘벌거벗은 목숨들’이 모여 새로운 자치질서를 만든 제헌권력의 출현 현장이었다. 지은이는 당시 5월 광주를 둘러싸고 세 가지 권력경향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하나가 호헌파이고 다른 하나가 개헌파이며, 세 번째가 바로 제헌파다. 호헌파는 유신폭압체제를 지키려 한 전두환 신군부를 가리키며, 개헌파는 유신체제를 개혁하려 한 재야 민주파를 가리킨다. 1980년의 초기 양상은 호헌파와 개헌파가 맞서 싸우는 모습으로 드러났는데, 5월 광주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타났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호헌파의 공수부대가 물러난 뒤 5월22일 지역의 유지·지식인 중심으로 구성된 5·18수습대책위원회가 이 개헌파의 논리를 뒤따랐다. 지은이는 이 수습위원회가 국가주권을 승인하고 그 아래서 계엄군의 선처와 관용에 호소하는 전략을 통해 사태를 수습해보려 했다고 지적한다. 개헌파의 이런 전략은 “거리의 다중들이 시민이 아니라 폭도이며, 그들의 행동이 저항이 아니라 난동이라는 ‘주권의 지각양식’을 정당화해준다.” 그리하여 수습위원회에 맞서 민주시민투쟁위원회가 결성되는데, 이들이 제헌권력을 떠맡게 된다. 새로 결성된 민주시민투쟁위원회를 이끈 것은 박남선·윤상원 같은 “특이한 개인들”이었다. 골재 채취 차량 운전사였던 박남선은 200여명의 시민군을 조직한 뒤 시민군 상황실을 맡고 있었다. 학생운동 출신으로 ‘들불야학’을 이끌던 윤상원은 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를 조직했다. “이 특이한 개인들의 활동이 시민군에 내재하던 제헌적 잠재력을 기폭시킴으로써, 광주의 ‘폭도들’은 호헌파에 맞설 힘을 회복할 수 있었다.” 지은이는 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를 특히 주목한다. 23일부터 매일 오후 2시 도청 앞 광장에서 열린 이 대회는 “시민들과 민중들이 참여하여 다양한 문제를 논의하고 결정하면서 정치적 집단지성과 집단의지를 생산하는 다중 자치의 공간이 되었다.” 박남선이 지도한 시민군은 공동체를 수호하는 군사조직 구실을 했으며, 도청에 자리잡은 민주시민투쟁위원회는 일종의 ‘혁명적 자치정부’의 성격을 띠었다.
조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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