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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나’를 쓰며 ‘나’를 성찰한다

등록 2010-04-23 21:31

〈나는 어떤 사람인가-선인들의 자서전〉
〈나는 어떤 사람인가-선인들의 자서전〉




〈나는 어떤 사람인가-선인들의 자서전〉
심경호 지음/이가서·2만8000원

나는 누구인가? 인간이 반성능력을 갖춘 이래 품게 된 근본적 물음이다. 철학의 양대 축인 존재론과 인식론도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가라는 영원한 궁구의 확장이다. 고대 그리스와 중국에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을 아울러, 철학의 관심은 ‘나’, 그러니까 ‘주체’의 문제에서 출발하고 귀착한다. 철학이 이런 물음과 단도직입으로 대면하고 사유하는 보편 논리라면, 자서전은 자기 삶의 궤적을 돌아보는 방식으로 ‘나’를 확인하고 재발견하는 개별적 서술이다. 자서전이 평전이나 회고록과 구별되(어야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선인들의 자서전’이란 어깨제목을 단 <나는 어떤 사람인가>는 조선의 제21대 왕인 영조(1694~1776)를 비롯해, 선비, 예술가, 승려, 중인에 이르기까지 선인들이 남긴 50편의 ‘자서전적 시문’들을 통해 그 내면을 들여다본다. 심경호 고려대 교수(한문학)가 2004년부터 기획한 ‘근대 이전의 주체’에 관한 탐색의 두 번째 결과물이다. 글마다 해제와 인물 소개를 곁들여 한 삶을 재구성했다.

영조는 서거 3년 전인 1773년, 나이 80살에 이르자 <어제자성옹자서>를 집필했다. 스스로를 자성옹(自醒翁, 스스로 깨달은 늙은이)으로 칭한 글에서, 영조는 “나이 6살 되던 해에 작위에 봉해진” 것을 시작으로, 혼례(11살), 사부에게 첫 수학(13살), 세자 책봉(28살) 등 까마득한 기억을 더듬는다. 특히 “사복(즉위)한 후에는 <한림시정기>가 있으니 내가 어찌 기록하겠는가”라며, 사관의 공식 역사기록을 존중하고 삼가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영조는 말년에 “나의 밭에서 나는 것을 먹고, 나의 샘에서 나는 물을 마시며, 나의 책을 보고, 나의 잠을 편안히 자며, 나의 본분을 지키고, 나의 연수를 즐기는 것”을 갈구하면서도, “아아, 오늘 이것을 실천할 수 있을지 없을지?”라며 ‘일일청한일일선’(하루 청한하면 하루 신선이란 뜻)을 되새겼다.

연산군 폭정과 중종 반정을 목도했던 문관이자 학자인 이자는 세상을 뜨기 2년 전인 51살 때 <오악무용>, 곧 “나는 악을 미워할 용기가 없었다”는 제목의 통절한 자서를 썼다. “선을 좋아하길 독실하게 하지 않고, 악을 미워하길 용맹하지 않았다”는 자탄이 오늘에도 가슴을 친다.

조선 후기의 승려 연담유일은 <치힐상반>(어리석음과 교활함이 반반)이란 자보를 남겼다. 학식과 수행 경력이 화려했던 그에게 “문장에도 능하고 시에도 능하다는 능문능시는 법문의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았다. 한 손이 없는 장애인을 아직도 999개의 손을 가진 천수관음으로 보는 정안(正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이 책을 쓴 의도가 “한문 고전 가운데 자서전적 시문의 계보를 고찰하려는 학문적 목표뿐 아니라, 선인들이 글쓰기를 통해 자기의 삶을 고백하고 인성을 성찰한 방식을 이해함으로써 현대인들에게도 그 방법을 제시하는 실용적 목표도 지닌다”고 밝히고 있다. 지은이는 나아가 책의 독자들에게도 자서전을 작성해보라고 권한다. “자서전을 적는다는 것은 자기 삶의 일정한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 구획하며 그 의미를 스스로 분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의 삶을 새로 기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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