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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동아시아 국가의 모델 ‘한나라’ 오디세이

등록 2010-04-09 19:45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2〉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2〉
‘십자군 이야기’의 김태권씨 역작
방대한 사실 자료 바탕 8년 연구
영웅 중심·설화 탈피 ‘400년’ 재해석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2〉
김태권 지음/비아북·각 권 1만2000원

“혹시 또 하고 싶은 작업 없어요?” 만화가 김태권씨가 <십자군 이야기>를 연재하던 시절 출판사 편집자가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글쎄요. 어떨지 모르겠지만, 중국 한나라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로마가 서양 역사에서 하나의 전범이라면 한나라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전범이었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와 정도전은 역성혁명을 준비하면서 <한서> ‘곽광전’을 돌려 읽었다. 김종직은 단종을 죽인 수양대군과 의제를 죽인 항우를 빗대 ‘조의제문’을 썼고, 이 글 때문에 연산군 때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오늘도 우리는 한나라와 초나라가 싸우는 장기를 두고, 필요할 때 쓰고 필요 없으면 야박하게 버린다는 ‘토사구팽’을 이야기한다. 동아시아 문화에서 항우와 유방은 2000년 동안 무수히 살아났다 죽었다. 유방이 세운 한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평민 출신도 황제가 된다는 ‘출세기’는 여전히 회자된다. 이처럼 항우와 유방의 <초한지>나 유비와 제갈량이 나오는 <삼국지>는 알아도 초한 쟁패기를 지나 삼국시대까지 이르는 세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한 제국 400년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한 대하 역사만화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는 이런 의문을 명쾌하게 풀어준다. 지은이는 이를 위해 8년 동안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등 중국 정사와 삼국지연의, 초한지연의 등 역사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 중국의 복식과 병기 등의 생활사 자료를 연구했다. 방대한 사실 자료를 바탕으로 한나라 역사를 탄탄하게 고증하고 재해석한다.

새로운 역사관과 세계관으로 접근한 이 책은 한나라 역사를 넘어 동아시아 문명의 형성이라는 큰 틀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영웅 중심 사관에서 벗어난 이야기 구성이 돋보인다. 진나라 말기 초나라와 한나라가 다투는 과정에서는 진나라에 반기를 든 진승과 오광에서부터 들불처럼 일어난 민초들의 마음에 응어리진 분노와 각성을 잘 보여준다. 또 민담과 설화를 한꺼풀 벗겨내고 보편적인 삶을 중심으로 다뤄 현실성을 부여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을 비판한 만화 <십자군 이야기>, 유럽의 르네상스 미술을 촘촘히 들여다본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등을 출간한 지은이가 풀어가는 이야기는 발랄하고 재치가 넘친다.

동아시아 국가의 모델 ‘한나라’ 오디세이
동아시아 국가의 모델 ‘한나라’ 오디세이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는 모두 10권으로 발간될 예정인데, 초반 세 권에서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과정과 초나라와 한나라가 천하를 다투는 과정을 그린다. 4권에서 7권까지는 한나라의 역사를 다루는데,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를 참고한다. 마지막 세 권은 한나라가 위, 촉, 오 세 나라로 나뉘어 천하를 다투는 과정을 담는다.

우선 1, 2권이 먼저 출간됐다. 1권 <진시왕과 이사>에서는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 이야기다. 서양에서 알렉산더가 중요한 인물이듯이 동아시아에서는 진시황제가 중요한 인물이다. 불과 100년 차이로 나타난 동서양의 두 영웅은 제국 건설이라는 비슷한 업적을 이룩했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대왕으로, 진시황은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진시황제를 성실한 일꾼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후대로 내려올수록 진시황제의 이미지는 나빠졌다.

왜 그럴까. 폭군으로 알려진 그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그가 장악한 무소불위의 권력, 그 너머 인간적 고독과 비장함을 담았다. 분서갱유의 실체와 유가와 법가의 사상논쟁 등 사회적 쟁점도 다뤘다. 2권 <항우와 유방>에서는 초한쟁패의 역사를 걷어내고 진나라 말기의 폭정과 그에 맞서는 백성들의 분노와 반란을 담았다.

서양을 이해하려면 로마를 알아야 하고 동아시아를 알려면 한나라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로마사를 다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정작 우리는 동아시아에서 살아가면서 한나라의 역사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한나라는 오랜 세월 동안 한국과 일본의 정치·사회의 본보기로 21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 그 영향력이 지속되고 있다. 지은이는 “남다른 의지를 가진 사람이 그 의지 덕에 출세를 하고 또 바로 그 의지 탓에 파멸하는 비극을 <사기>와 <한서>는 적나라하게 파헤친다”며 “권력 앞에 개인의 고독을 이만큼 천착한 책은 드물다”고 말했다. “한나라를 알아야만 우리 사회와 문화의 원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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