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천정환, 권명아, 나이토 지즈코, 고노 겐스케.
한-일 소장 국문학자 ‘트랜스내셔널’ 좌담
국민국가 틀 벗어나 조망
트랜스내셔널 필요성 공감에도
역사적 책임성 문제엔 여전히 긴장 지구화 시대의 대안적 세계인식 방법론으로 떠오른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근대문학을 조명하는 데도 유의미한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까? 제국-식민지 관계로 묶여 있던 양국의 20세기를 ‘트랜스내셔널’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 근대문학을 연구하는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 소장 연구자들이 ‘트랜스내셔널’이라는 주제를 두고 머리를 맞댔다. 일본 이와나미 서점이 발행하는 격월간 문학전문지 <분가쿠>(文學) 3·4월호가 ‘한·일 트랜스내셔널’이란 이름으로 마련한 특집 좌담을 통해서다. 트랜스내셔널은 ‘초월하는’ ‘가로지르는’이란 의미의 트랜스(trans)와 ‘국가적’ ‘민족적’이란 뜻의 내셔널(national)을 합성한 말로, 역사나 문화를 국민국가 ‘경계 안’에서가 아닌 ‘경계 위’에서 바라보려는 움직임을 가리킨다. 좌담에는 한국 쪽 참가자로 권명아 동아대 교수(국문학)와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국문학)가, 일본에서는 고노 겐스케 니혼대 교수와 나이토 지즈코 오쓰마대 교수가 나섰다. 그런데 참가자들은 민족주의에 침윤된 20세기 ‘국문학’ 연구가 은폐하거나 간과했던 ‘타자성’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점엔 동의하면서도, ‘제국-식민지’ 관계가 초래한 억압과 역사적 책임성 문제를 두고선 미묘한 긴장을 연출했다. 천 교수는 “(두 나라는) 가장 지리적으로 가깝고 (접촉의) 역사가 오래됐기 때문에, 국가와 권력은 더 많은 압력으로 자연스러운 (트랜스내셔널의) 우연과 필연을 통제해왔다”며 “한-일 관계의 특수성은 일반적 의미의 ‘트랜스내셔널’로 환원할 수 없는 면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나이토 교수는 “트랜스내셔널은 근본적으로 차이를 지우는 것이 아닌 접촉과 충돌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며 국가 권력의 개입과 압력보다는 월경과 횡단의 ‘즉자성’을 부각시켰다. 이런 차이는 식민지 시기 일본과 조선에 수립된 ‘근대 문화의 동시성’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드러났는데, 고노 교수가 당시의 일본과 조선을 어떤 대등함을 유지한 상태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두 개의 축’으로 바라보려 한 반면, 천 교수는 이런 시각이 당시 양쪽의 힘이 “전혀 달랐음”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 오류라 비판한 것이다. 실제 1920~30년대는 한국과 일본 모두 문화적 격변기였다. 출판문화가 새 전기를 맞고 시각문화가 확산됐으며, 모더니즘과 유물론이 유입되는 가운데 언어 시스템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천 교수는 당시 조선 지식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것은 일본에 대한 ‘열등감’이었으며,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격차는 일본어 강요 같은 ‘말살’ 행위에 의해 비로소 줄어들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런 미묘한 시각차에도 불구하고 세계와 대면하는 ‘방법’이자 ‘태도’로서 트랜스내셔널이 필요하다는 점에선 양쪽의 의견이 일치했다. 이것을 권명아 교수는 “지령선 없는 파르티잔처럼 행동하는 것”이라 일컫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가라는 상부의 소환”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권 교수의 견해에 고노 교수는 “트랜스내셔널의 실질 내용은 민중 스스로 이루는 연대”여야 한다는 말로 동의를 표시한다. 잡지에는 좌담 외에도 권보드래 동국대 교수(교양교육원)가 3·1운동의 사상사·문화사적 의의에 대해, 이혜령 고려대 교수(민족문화연구원), 한기형 성균관대 교수(동아시아 학술원) 등이 각각 일제의 탄압이 사회주의 문학에 끼친 영향, 일제의 검열과 문학의 관계를 파헤친 기고 논문이 함께 실렸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