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학의 정체성론·타율성론에 대항해 치밀한 실증연구에 기반한 자본주의 맹아론을 제출함으로써 내재적 발전론의 물줄기를 튼 김용섭 연세대 명예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계간 ‘내일을 여는 역사’ 김용섭 논쟁
김용흠 연세대 교수(국학연구원)와 도면회 대전대 교수(역사문화학과)가 최근 6개월의 시간차를 두고 계간 <내일을 여는 역사> 지상에서 공방을 주고받았다. 지난해 9월 김 교수가 <역사학의 세기>(휴머니스트)에 대한 비판적 서평을 <내일을…>에 기고하자 책의 엮은이 가운데 한 명인 도 교수가 반박문을 써 맞불을 놓은 것인데, 관전자들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이 다툼의 중심에 한국 역사학계의 ‘뜨거운 상징’ 김용섭(연세대 명예교수)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탈민족주의 사학그룹의 김용섭 비판에
제자 김용흠 교수 “왜곡·과장됐다” 반박
도면회 교수 재역공…지면공방 본격화 발단이 된 <역사학의 세기>에는 탈민족주의적 ‘국사해체론’의 관점에서 성찰적 동아시아 역사상을 추구해온 한국과 일본 역사학자의 글 13편이 실려 있다. 김 교수는 이 가운데 국내 탈민족주의 사학의 대표주자 격인 윤해동 성균관대 교수(동아시아학술원)의 글 ‘‘숨은 신’을 비판할 수 있는가-김용섭의 내재적 발전론’을 핵심 표적으로 삼았다. 윤 교수의 글은 원래 2006년 봄 역사학대회에서 발표된 것인데, 김용섭을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역사학계의 ‘숨은 신’으로, 그의 ‘내재적 발전론’을 한국 사학계에서 작동하는 대표적 ‘지식권력’으로 호명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언론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당시 윤 교수의 ‘도발’은 논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학계의 제자 그룹이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의도적인 무시에 가까웠다. 그런데 윤 교수의 글이 3년 만에 단행본으로 묶여 출간돼 나오면서 멍석이 다시 깔렸다. 김용섭의 직계 제자인 김 교수는 <내일을…> 기고문에서 내재적 발전론이 “마르크스 역사 유물론의 (생산력/생산관계) 조응론과 (봉건제→자본제) 이행론에 바탕을 둔, 강력한 일국적 발전론”이며 “서구의 근대를 전범으로 설정하고 한국 사회의 발전경로를 이에 입각해 증명하려는 목적론적 도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윤 교수의 비판에 일차적 초점을 맞췄다. 김 교수의 핵심 전언은 김용섭 역사학이야말로 “한국사 연구에서 횡행하는 도식성·목적론과 투쟁해왔다”는 것인데, 그 근거로 “한국사에서 사적 토지 소유의 존재를 집요하게 추적해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국유제론이 사실과 어긋난다는 점을 밝혀”냈으며, “양반·지주층인 실학자들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넘어 농민적 입장의 개혁론을 펼친” 사실에 주목했던 점 등을 꼽는다. 내재적 발전론이 “민족주의와 발전주의라는 패러다임을 박정희의 근대화론과 공유”함으로써 사실상 당대의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에 동참”했다는 윤 교수의 비판에 대해선 “박정희의 민족주의·발전주의는 취약한 정통성을 위장하기 위한 정치선전에 불과”했던 것으로 “내재적 발전론의 그것과 표현만 같을 뿐 내용은 상반된 것이었다”고 김 교수는 반박한다. 이런 김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윤 교수의 김용섭 비판이 과장과 왜곡, 날조에 근거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김 교수의 비판에 대해 도 교수는 내재적 발전론이 “식민사관에 대한 저항 논리라고 하지만, 그 안에는 오리엔탈리즘이 식민지에 인식론적으로 강요한 ‘주체로서의 국민/민족’ ‘발전’ 등의 개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단지 주어와 목적어를 바꿔 사용하는 ‘반오리엔탈리즘적 오리엔탈리즘’일 뿐”이었다고 반박한다. 박정희의 민족주의·발전주의가 “단순한 정치선전으로 내재적 발전론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김 교수의 반박에 대해서도 “단순한 선전이었다면 박정희가 그처럼 장기간 독재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민주화 운동의 주체세력들 역시 민주주의와 분배·평등을 말했지만 사실상 좀더 평등한 민족주의, 분배 정의가 좀더 이뤄지는 발전주의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근대화론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역공한다. 다만 도 교수는 내재적 발전론의 최종 목표가 “근대화를 지상 과제로 삼는 것”이었으며 “민족지상, 국가지상, 근대지상의 논리 위에 구축됐다”는 윤 교수의 애초 공격에 대해선 “김용섭은 이런 논리를 명시적으로 제시한 적은 없다”며 “김용섭 역사학 자체에 대한 지적으로는 과도하다”고 받아들인다.
6개월의 시간차를 두고 이뤄진 이들의 공방이 본격적인 ‘김용섭 논쟁’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미지수다. 유념해야 할 대목은 김용섭의 제자로 참여한 김 교수나, 책의 엮은이임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윤 교수의 ‘대리인’ 자격으로 뛰어든 도 교수 모두 반년 전 개편된 <내일을…>의 편집위원이란 점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두 사람의 공방을 마케팅 차원의 ‘자가발전’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핵심 당사자인 윤 교수가 공방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는 점도 의아스럽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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