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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노비 송사로 본 조선의 사법 풍경

등록 2010-02-19 19:12

〈나는 노비로소이다-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
〈나는 노비로소이다-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




〈나는 노비로소이다-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
임상혁 지음/너머북스·15000원

드라마 <추노>에 등장하는 송태하(오지호)와 노비 언년이(이다해)가 결혼을 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의 신분과 소유권은 과연 어떻게 될까. 언년이의 상전이었던 추노꾼 이대길(장혁)이 그 아이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

조선 전기에는 노비의 소유권을 다투는 노비송, 후기에는 묘터의 소유권을 다투는 산송이 중요한 민사 소송이었다. 원고와 피고가 구술이나 문서로 자신의 주장을 한껏 토해내던 조선시대의 송사는 매우 역동적이었다. <나는 노비로소이다>는 노비 송사를 사례로 조선시대의 사법 풍경을 한눈에 보여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근무했던 임상혁 교수(숭실대 법학)는 이 책의 핵심 서사인 5건의 결성입안을 연구한 결과, 김성일이 나주 목사로 재직하던 시기에 처리한 판결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김성일 종택에 있던 고문서를 간지, 연호, 인물들의 나이, 판결한 이의 서명 등을 면밀히 대조한 결과다.

1586년(선조 19년) 3월13일. 전라도 나주 관아에서 노비 소송이 벌어졌다. 원고 이지도는 다물사리가 양인이라 주장하고, 피고 다물사리는 자신은 노비라고 반박한다. 당시 노비의 신분을 다투는 소송에서는 노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 보통인데, 왜 다물사리는 스스로를 노비라고 주장한 것일까.

 두 사람은 송관 앞에서 법에 따라 판결을 해달라는 ‘시송다짐’을 한 뒤 최초 진술인 ‘삷등’을 한다. 이지도는 다물사리의 남편이 이지도의 아버지 소유의 노비인 윤필의 아들이라며, 그 자손도 자기 집안의 노비라고 주장한다. 조선시대에는 부모 중 한쪽이 노비면 그 자손도 노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물사리는 자기가 성균관 소속의 관비인 길덕의 딸이라서 자신도 관비라고 주장한다. 부모가 모두 천민일 경우 아버지가 사노비더라도 어머니가 관비라면 그 자손들은 모계를 따라 모두 관비가 된다. 다물사리는 자기 후손들을 혹독한 대접을 받는 사노비보다는 비교적 덜 고통스런 관노비로 만들 생각에서 이렇게 주장한 것이다.


양쪽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자 송관 김성일은 증거조사에 들어간다. 먼저 국가의 공적 장부인 호적을 조사하고 증인을 불러 신문한다. 호적을 조사할 때는 보통의 계보 외에도 원고의 경우 멀쩡한 양인을 자신의 노비라고 호적에 올리는 ‘암록’을 했는지, 반대로 피고의 경우 각종 역을 피하려고 세력가나 기관에 몸을 맡겨 노비가 되는 ‘투탁’을 한 것인지 따져본다. 조사 결과 다물사리는 자기 자손들을 사노비에서 관노비로 바꾸려고 성균관에 투탁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성일은 다물사리의 딸 인이와 그의 소생들을 이지도의 어머니 서씨 부인에게 지급하라고 결정한다.

 조선시대에는 임금도 넌더리를 낼 정도로 노비 송사가 많았다. 이 시대에는 거느린 노비의 수가 부의 척도였다. 노비는 평생 주인에게 노동과 재물을 바쳐야만 했고, 그 자체로 알짜배기 재산이었다.

노비제 사회는 주인 입장에서 보면 더할 나위 없는 체제이지만, 노비로서는 벗어나고 싶은 질곡의 굴레다.

지은이는 “노비제도가 조선시대의 신분제도와 사회 얼개를 규명하는 핵심”이라고 보고 “노비 소송 절차를 통해 당시 사회 체제가 빚어내는 반목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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