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개청춘〉
〈위풍당당 개청춘〉 유서 깊은 서울의 사립 여자대학을 졸업한 뒤 고시생 아닌 고시생이 돼 언론사 문을 두드리다 좌절하길 3년. 어디서든 일만 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것 같던 시기, “우연히 읽은 책 줄거리를 써낸 입사시험”에 합격해 백수 탈출에 성공한 20대 ‘직딩녀’의 세상 사는 이야기다. 동세대의 태반이 백수라는 엄혹한 현실을 뚫고 ‘무소속’의 딱지를 떼는 데까진 성공했으나 삶은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 “가자미튀김과 고등어튀김이 반복되는” 점심메뉴 같은 일상의 단조로움과 “논조를 바꿔 젊은이들을 공격하는” 어른들 때문인데, 어떻게든 버텨보자니 속은 끓어오르지만 시정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쓰기 시작한 작은 조각글들이 모여 책이 됐다. 스스로 밝힌 집필 의도가 “회사 가기 싫어서”다. ‘이십대가 말하는 이십대의 이야기’란 콘셉트로 쓰여졌지만 무거운 ‘세대론’에만 의지해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는다. 글의 소재란 게 대부분 직장에서 생활하며 부딪치는 소소한 일상인데, 그것은 협력업체 직원과의 대화가 될 때도 있고, 직장상사들에 대한 뒷얘기이거나, 인터넷 메신저 사용법을 익힌 엄마와의 대화, 사무실에서 개나 고양이를 길러보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상상일 경우도 있다. 20대 직장인들의 일상사가 다 거기서 거기인데도, 한 번 펼친 책장을 쉬 덮을 수 없는 것은 글쓴이의 타고난 유머감각과 ‘초딩’ 시절부터 갖게 됐다는 글에 대한 자의식, 일상의 비루함에서도 산다는 것의 철학적 의미를 길어올릴 줄 아는 애늙은이 같은, 아니 속 깊은 사유의 힘인 듯하다. 유재인 지음/이순·1만2000원.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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