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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집이 계급을 가르더라…순간 소름이 돋았다”

등록 2010-02-11 14:29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 펴낸 손낙구씨
지지정당 선택 부동산자산따라 갈려
전통적 계급정치 모델과 차이 드러내
숫자는 힘이 세다. 좀체 포획되지 않던 현실의 구체성을 인지가능하고 비교가능한 ‘양’으로 표시해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 적나라한 현실이 정량화된 수치로 발가벗겨지는 순간 사람들은 예기찮은 당혹감에 몸을 떨곤 한다. 20년 가까이 노동운동 판에서 잔뼈 굵은 손낙구(49·사진) 전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 역시 그랬다. 그는 최근 <대한민국 정치 사회 지도>(후마니타스)라는 수도권 지역사회 연구서를 내놓았다. 분량이 1600쪽이 넘는다. 수도권 1186개 동네(읍면동)의 사회지표를 백분률로 환산해 정리하면서, 주민들의 정치적 선택이 자산(주택)·학력·종교 같은 사회경제적 변수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파헤친 역작이다. 그 전언 가운데 하나는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동네일수록 주택소유자와 고학력자가 많은 반면, 민주당을 많이 찍은 동네는 무주택자, 저학력자가 많다는 사실이다.

-분석 작업 전 이런 결과를 예상했나.

“엑셀 출력지를 뽑아든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막연히 추정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떤 사실이 그리 충격적이었나.

“서울에서 한나라당 득표율이 높은 동네 열 군데를 추려봤더니 주민 10명 가운데 8명이 자기 집을 갖고 있고, 9명은 대학 이상을 나온 사람인 반면, 민주당 득표율이 높은 동네들은 집 가진 사람이나 대학 나온 사람이 10명 가운데 4명이 채 안 됐다. 이거야 말로 주택을 매개로 진행 중인 ‘계급의 지역적 구조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손 전 실장의 작업은 한국에서 소득보다는 자산, 그 중에서도 부동산 자산이 사회정치적으로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유권자가 노동자인지 자본가인지, 노동자라면 생산직인지 사무·관리직인지, 소득은 또 얼마나 되는지 등의 차이보다 자기 집이 있는지 없는지, 다주택자인지 아닌지 등의 차이가 지지정당을 가르는 데 한층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손 전 실장의 분석결과는 전통적인 계급정치 모델에서 이탈하는 한국적 특수성을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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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함의대로라면 한국에서 전통적인 계급구획이 정치적 의미를 갖긴 어려울 것 같다.

“단정하긴 이르다. 다만 앞선 책 <부동산 계급사회>에서 이야기하려 했던 것처럼 소득이나 금융자산보다는 주택 자산의 많고 적음으로 집단을 분류하는 게 한국에서 강한 설명력을 갖는 것은 분명하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다수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주택소유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집단 아닌가.

“지방은 특히 그렇다. 이번에 경기 화성(쌍용차가 있다)을 눈여겨 봤는데, 민주노총 조합원이 많은 대공장 지역이라 해서 결과가 다르게 나오지 않았다. 조합원 여부가 투표행위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얘기다. 변수는 역시 집이다.”

의아한 점은 손 전 실장이 애초 투표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변수로 주택·학력·종교 세 가지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계급에 기반한 투표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되어온 것이 출신지역이란 사실을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출신지역은 왜 변수로 안 다뤘나.

“불가능했다. 데이터로 활용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센서스) 자료에는 출신지 구분이 아예 없다.”

-서울·수도권 역시 출신지에 따른 투표경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통계를 돌려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나 역시 궁금하다. 추측컨대 출신지역과 계층이 상당부분 겹치게 나오지 않을까. 일선에서 선거를 치르며 느꼈던 문제이기도 한데, 호남 출신 가운데 무주택·빈곤층 비율이 높고, 영남 출신에선 주택소유·부유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게 사실이다. 이 문제로 최장집 교수와도 얘기를 나눠봤다. 최 교수도 얘기하더라. 조사해보진 않았지만 상당부분 겹칠 거라고.”

통계 전문가들은 손 전 실장의 분석이 지닌 방법론적 맹점을 꼬집기도 한다. 투표행위의 결과(정당득표율)에 따라 전체를 5개 집단(분위)로 배열한 뒤 각 분위별로 주택소유·학력·종교 등 변수들의 변화 추이를 살피는 방식으로는 어떤 변수가 얼마 만큼 실제 투표 행위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엄밀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변수들 상호간의 간섭을 통제하는 것이 필수다. 회귀분석 같은 전문 통계기법이 동원되는 이유다.

-회귀분석 기법을 쓰지 않은 이유는.

“내가 사회과학 전공자가 아니지 않나.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위까지만 가보자고 생각했다. 사실 회귀분석처럼 정교하게 들어가면 이번 것처럼 눈에 확확 들어오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장담은 못하겠다.(웃음)”

-연구자들 가운데 데이터에 욕심을 내는 사람이 적지 않을텐데.

“분석에 활용한 읍면동 단위 센서스 자료는 국회 보좌관할 때 입수한 공공자산이다. 독점할 이유가 없다.”

-연구 지역을 확장하거나 분석을 좀더 심화시켜볼 생각은.

“숫자니 통계니, 징글징글하다. 깊은 연구는 전문가들 몫이다. 난 본업인 노동운동사 연구나 하련다.(그는 올해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책에는 지역변수와 정당선호의 관계 못잖게 시선을 잡아끄는 게 있다. 투표율이다. 분석에 따르면 투표율이 낮은 동네는 예외없이 무주택자, 1인가구, (반)지하 거주자, 저학력자의 비율이 높다. 왜 가난한 동네 사람들은 투표장에 가지 않는가. 원인이 무엇이든 분명한 것은 가난한 자들이 민주주의 이전 사회가 그들에 부과했던 위치, 곧 정치라는 공적 공간에의 참여가 배제된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다수 대중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관철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이런 현상이야말로 랑시에르가 말한 ‘인민 없는 민주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그렇다면 정작 경각심을 가져야할 대목은 ‘계급의 지역적 구조화’나 ‘계급과 정치적 선택의 불일치’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적으로 뿌리뽑힌 자들의 다수가 ‘정치’라는 영역의 분할선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터뷰는 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이뤄졌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사진 이종찬 선임기자 k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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