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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축구공이 가져온 차별없는 세상

등록 2010-01-29 19:17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
척 코어·마빈 클로스 지음, 박영록 옮김/생각의나무·1만3000원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는 잔혹하고 엄격했다. 흑인들은 자유롭게 거주할 수도, 일할 수도, 심지어 통행증 없이는 거리를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한 많은 사람들이 케이프타운 근처 로벤 섬에 있는 수용소에 수감됐다. 수감자들은 ‘국가의 적’으로 이름 붙여졌고, 테러리스트로 인식됐다. 고된 채석장 노역으로 수감자들의 육체는 야위어 갔고, 정신은 피폐해졌다. 그들은 건강을 위해서든 아파라트헤이트에 저항하기 위해서든 뭔가를 해야 했다.

셔츠를 뭉쳐서 만든 ‘축구공’
셔츠를 뭉쳐서 만든 ‘축구공’
그때 기발한 ‘놀이’가 등장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동료 수감자들이 감방 안에서 자신들의 셔츠를 뭉쳐서 ‘축구공’(사진)을 만들어 경기를 했다. 그들은 감방 축구를 경기장에서 정식으로 할 수 있기를 원했다. 1964년 12월 말부터 재소자들은 매주 번갈아 가며 똑같은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축구하는 것을 허가해 주시오.” 처음 이 말을 들은 교도관은 코웃음만 쳤다. 교도관은 식권을 빼앗는 방법으로 보복했다. 축구 경기를 하기를 원하는 수감자들의 투쟁은 계속됐고, 교도소 당국의 허가를 받는 데 꼬박 4년이 걸렸다.

7개 클럽이 정치진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만들어졌다. 이 중에서 마농 에프시(FC)는 정치진영에 관계없이 선수들을 선발한 첫 번째 클럽이었다. 남아공의 대표적인 민주화 세력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와 범아프리카회의(PAC) 회원들이 섞여 있었다. 마농 에프시의 모토는 ‘독수리는 배가 고프다’는 뜻을 지닌 ‘아 라필레’였다. 각각의 클럽은 대표, 간사, 임원을 선출했다. 남아공의 지도자가 된 사람 중에는 감옥에서 축구를 통해 조직하고 협상하고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격려하는 법을 배웠다. 남아프리카공화국 12대 대통령인 제이컵 주마는 레인저스 에프시(FC)의 주장이었다.

1400여명에 이르는 수감자들은 그들의 축구 리그인 마카나축구협회에서 선수, 매니저, 심판, 코치 등으로 활동했다. 세 개의 리그로 나눈 여러 팀이 매주 경기를 치렀다. 긴장감이 높은 감금 생활을 해야 했기에 엄격한 축구 규칙을 만드는 건 무엇보다 중요했다. 경기는 피파(FIFA) 규정을 엄격히 적용해 치러졌다. 감방 축구는 마카나축구협회로 발전해 1991년 교도소가 폐쇄될 때까지 20년 넘게 운영됐다.

축구는 고된 수감 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즐거움이자 다양한 정치적 신념과 배경을 가지고 있는 수감자들을 하나로 묶어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는 밑바탕이 됐다. 축구 리그가 정착하자 럭비, 테니스, 배구 같은 종목으로도 확대됐다. 또 로벤섬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하계 대회를 개최했다. 교도소의 일상생활이 스포츠로 변했다. 외바퀴 수레 경주, 작업에 지각하기 경주, 감자와 숟가락 경주, 양동이 경주 등도 즐겼다.

“우리 수감자에겐 정신적·육체적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아이잭 음티무녜, 수감번호 898/63) “스포츠는 우리 공동체에게 닥쳐온 비참하고 절망스러운 상황의 고통을 완화하는 한 방법이었다.”(안토니 수즈, 수감번호 501/63) 정치범 수감자들이 만든 축구 리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주화와 함께 2010년 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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