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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자유주의, 사회주의와 손잡을 여지 많아”

등록 2010-01-27 19:07

박동천 전북대 교수(정치학)
박동천 전북대 교수(정치학)
‘깨어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 쓴 박동천 교수




부동층 급격한 우경화 원인 파헤쳐
“마녀사냥등 보수 프레임 결별해야”
‘소외층 복지’ 더한 사회적 자유주의 주창
“반이명박 연대론 정책지향 못담아

2002년 노무현에게서 희망을 발견했던 유권자 가운데 300만~400만명은 5년 뒤 선거에서 이명박·이회창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이 사실은 한국사회 부동층의 우경화를 드러내는 지표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문제는 그런 우경화가 왜 그토록 급속하게 일어났는가 하는 점이다. 박동천 전북대 교수(정치학·사진)가 <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모티브북)에서 규명하려는 것도 바로 이 문제다. 노무현을 지지하던 그 많은 자유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박 교수가 이 책에서 문제 삼는 것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네 가지 프레임이다. ‘마녀사냥’ ‘권력숭배’ ‘선견지명’ ‘집단생존’이란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들이야말로 “우리 정치의식을 편협하고 폐쇄적이고 피상적으로 만드는 원인”이라는 게 박 교수의 진단인데, 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 마녀사냥 프레임이다. “가짜 문제를 하나 찾아낸 뒤 언어적 분풀이를 영속시키는 경향”이자 “보기 싫은 일이 있으면 원인이 뭔지, 무슨 탈이 실제로 생기는지,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등을 따지기 전에 무작정 그 징후를 말로만 공격해대는 증상”이다. 지역주의가 전형적 사례다.

“지난 20여년 동안 우리 사회에선 ‘지역감정’ ‘지역구도’ ‘지역주의’ 등의 구호들이 대표적인 분풀이의 과녁 역할을 했습니다. 보수·진보를 망라해 지식인들이 20년 동안 지역감정을 열심히 비난해온 결과 이제는 거의 모든 국민이 지역감정을 말하지 않고는 한국정치를 이해할 수 없다고 여깁니다.”

문제는 이런 경향들이 ‘가짜 문제’를 만들어 공론장에서는 지속적으로 그것을 공격하면서도 “사적 공간에서는 거기에 적응하는” 이중적 행위습성을 빚어낸다는 점이다. 교육 문제의 원인을 ‘대학서열화’로 돌리거나 사회위기의 근원으로 ‘신자유주의’를 지목하면서 정작 삶의 영역에서는 서열화된 대학 시스템이나 신자유주의 경쟁논리에 기민하게 적응하는 영악함이 그것이다. 이를 두고 박 교수는 “범사회적 정신분열증”이라 비판한다. 권력숭배나 선견지명(교조주의), 집단생존(민족주의)이란 나머지 프레임도 마찬가지다. 박 교수가 볼 때 이들 모두 “가짜 문제를 쫓아다니는 마녀사냥의 습성과 관계가 깊다”는 점에서, 진보진영이 결별해야 할 ‘보수적 편협성’을 대표하는 것들이다.


<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
<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
이런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난 새로운 제도적 지향점으로 박 교수는 두 가지를 제시한다. 절차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다. 그런데 사회적 자유주의란 개념이 다소 생소하다. 박 교수는 “그 생경함이야말로 우리 사회 정치의식의 편협함과 폐쇄성을 보여주는 반증”이라 꼬집는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여러 갈래 중에는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넓”은데, 사회적 자유주의는 바로 “정치·사법의 자유주의”와 “소외계층의 복지”를 결합한 제도다. 그 사례를 박 교수는 19세기의 존 스튜어트 밀과 20세기의 케인스 등에서 찾는다.

“‘곤들매기(작은 물고기 등을 먹고 사는 연어과 민물고기)의 자유는 붕어에겐 죽음’이란 말이 있어요. 자유주의자가 이 측면을 도외시한다면 파시스트에 가까운 것이고, 사회주의자로서 절차를 배척한다는 것은 사춘기적 열사숭배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제도의 변화’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진 않는다. 중요한 건 ‘공론의 변화’다. 공론의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도 제도를 바꿀 순 있지만, 이 경우 법률의 문구만 바뀔 뿐 사람들의 행태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요청하는 것은 공론과 제도의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적 사고인데, 문제는 지금의 진보진영에선 그런 유연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가시화한 ‘반신자유주의 연대론’과 ‘반이명박 연대론’의 대립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편을 가르기 위한 명칭이란 것 말고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지 회의적입니다. ‘신자유주의 반대’는 ‘자본주의 반대’와 마찬가지로 뚜렷한 정책지향을 담을 수 있는 문구가 아닙니다. ‘이명박 반대’도 적극적 가치를 표명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저항 구호인 것은 마찬가지지요. 결국엔 진영 간의 주도권 다툼이 아닌가요?”

박 교수는 이러한 담론상의 대립이 실상은 자기 진영의 주도권 확보를 노린 정치적 욕망의 표현임을 서로가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쌍방이 상황을 이처럼 세속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뭔가 엄숙한 의미를 불어넣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면” 타협의 가능성을 좁히고 결국엔 판을 깨는 것으로 귀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뉴질랜드에 체류중인 박 교수와의 대화는 이메일을 통해 이뤄졌다. 600쪽에 가까운 방대한 저작의 집필에 매달렸던 이유를 묻자 “한국정치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 정부 말기 나는 일본 같은 체제가 결국 아시아의 정치모델로 고착되지 않을까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집단생존에 매몰돼 공장 부품처럼 일하는 개인들로 지탱되는 사회, 도덕이나 역사에 관한 상상력은 제한되고 손재주 또는 생산력으로 그럭저럭 버티는 사회 말이죠. 이는 민중의 요구가 임계점 가까이 가면 보수파가 선심 쓰듯 수용해 장기집권을 이어가는 엘리트 순환체제입니다. 이런 흐름을 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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