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과 반공국가주의〉
〈스캔들과 반공국가주의〉
공임순 지음/앨피·1만9500원 문학과 역사, 정치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국 사회에 드리워진 식민지 근대성의 기원과 그늘을 탐사해온 소장 인문학자 공임순씨가 <스캔들과 반공국가주의>라는 비평집을 내놓았다. 분단과 식민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며 대한민국의 탄생에 얽힌 ‘추문의 정치’를 다각도로 파헤친 책이다. 글쓴이가 볼 때 대한민국의 성립은 “식민지 시기 친일 인사들의 정치적 결합체인 한민당과 미군정의 밀월 관계”의 산물인데, 책이 파고드는 지점은 그 밀월의 불쏘시개가 됐던 ‘친교’라는 이름의 젠더정치다. “우파 지도세력의 정치적 위상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이승만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우파세력을 뿌리내리게 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미군정의 폭압적 군사력과 경찰력뿐 아니라, 여성들의 사교와 친교 모임까지….” 주목할 점은 해방공간에서 여성들의 사교모임에 부여됐던 이중성이다. 당시 사교는 “사적이면서 공적인 자리”였다. 여성적 미덕이 발휘되는 친숙하고 안정된 영역이란 점에서 냉혹한 생존논리가 지배하는 외부와 구별되지만, 동시에 이를 통해 남성들의 공적 활동을 뒷받침한다는 차원에서 “공개적이면서 비공개적인 장”이었다는 얘기다. 사교 모임에 참여했던 여성들 가운데 책이 주목하는 인물이 시인 모윤숙(1910~1990)이다. 모윤숙은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깊숙이 개입한 공로로 주류 남성들의 영역인 정치사회에 진입할 특권이 허락됐는데, 이를 두고 글쓴이는 “여성의 영역으로 특화된 사교의 장을 선점함으로써 이룬 성애의 정치화”라고 못박는다. 중요한 점은 당시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성애의 정치화’가, 연루된 여성의 개인적 입신뿐 아니라 대한민국이란 분단국가의 탄생을 뒷받침했고, 국가 역시 국제적 인정을 얻기 위해 여성의 성적 능력을 적극적으로 동원했다는 사실이다. 실제 해방공간에서 모윤숙이 보인 활약상은 자전적 고백이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 윤곽이 알려져 있다. 1948년 유엔 임시위원단의 중립국 대표로 방한한 인도의 크리슈나 메논을 설득해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받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고백대로 모윤숙은 ‘낙랑클럽’이 마련한 파티에서 메논과 안면을 튼 뒤 그와 이승만을 연결하는 연락책 구실에 충실했다. 문제의 낙랑클럽은 영어 구사력과 미모, 매너를 갖춘 엘리트 여성들로 꾸려진 사교모임으로, 미군정 관료나 해외사절의 파티가 열릴 때면 초청돼 이들을 접대하고 유흥을 제공하는 구실을 했다. 파티는 수많은 소문과 억측의 진원지가 됐는데, 모윤숙과 메논의 관계 역시 그랬다. “진실한 마음의 교류”로 여긴 모윤숙과 달리 사람들은 육체와 성이 개입된 불온한 상상력을 동원해 저마다의 각본을 재생산했던 것이다. 글쓴이는 이것이 “앎-권력-성을 독점한 지배층 사교 모임이 불러일으킨 필연적 결과물”이란 점에서 “외부자의 저속한 시선 탓으로 돌려버리기 어려운” 정치적 진실을 담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 진실이란 “불평등하고 비대칭적인 국제정치 질서가 여성의 육화된 성을 매개로 협상되고 재조정”됐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모윤숙의 고백이야말로 “대한민국의 합법성이 성애화된 비공식적인 경로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글쓴이는 말한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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