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민주주의의 공간’이라는 광장의 이상은, 광화문광장의 정치행위를 원천봉쇄한 서울시의 ‘삽질’에 의해 본래의 판타지적 성격을 폭로한다. 지난 8월 광화문광장 조례의 개정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을 경찰들이 에워싸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하상복·이택광 교수 ‘광장’ 해부
문화 매개로 삼은 정치적 퍼포먼스
프랑스 ‘오스망주의’ 서울서 재현
정치행위 봉쇄가 외려 ‘광장 정치화’ 아니 건드린 것만 못한 게 돼 버렸다. 논란은 3년 전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의 시작을 공식화하는 순간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심 개방공간의 정치적 휘발성을 모를 리 없는 관료들이 미국 대사관과 중앙 정부기관이 밀집한 수도의 한복판에 군중 집결이 가능한 광장을 열기로 했다면 위험의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확실한 유인 요인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 셈법은 외부에 알려져선 곤란한 것이었다. ‘권력의 공간’을 시민 품에 돌려준다는 명분의 순수성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광장의 독점을 비판하는 지식인들이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도 이 지점이다. 하상복 목포대 교수(정치학)와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문학)가 각각 계간 <기억과 전망>(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과 <미래와 희망>(미래&희망) 기고문에서 광화문광장으로 상징되는 현대 도심 광장의 권력 효과를 해부했다. 이른바 광장의 문화정치학이다. 하상복 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광화문광장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권력 논리다. 그가 볼 때 2000년대 만들어진 서울의 광장들은 노골적인 정치적 상징들로 넘쳐났던 과거의 광장들과 다르다. 서울광장과 청계광장, 광화문광장이 그런 경우인데, 이곳에는 정치권력의 힘과 의지를 감지할 만한 뚜렷한 상징물이 없다. 기껏 푸른 잔디밭이나 거대한 고둥 조형물처럼 ‘복원된 자연성’을 재현하거나, 세종대왕상처럼 ‘세종로’란 지명의 장소성을 확인시킬 뿐이다. 이런 점에서 왕궁의 전각을 허물어 총독부를 세웠던 식민권력이나 고층의 청사를 짓고 광화문을 복원해 근대화라는 치적을 민족주의적 상징과 결합시켜 과시했던 박정희 정부, 총독부 건물을 철거해 군사정권이 갖지 못한 역사적 정통성의 담지자임을 드러내려 한 김영삼 정부의 필사적 노력과는 사뭇 대조된다.
왼쪽부터 하상복·이택광 교수.
이 교수의 참조 사례는 프랑스 제2제정기 오스망(1809~1891)에 의한 파리 개조다. 많은 도시사 연구자들이 지적하듯 도심의 미로를 일소하고 대로와 광장을 중심으로 파리의 공간을 혁명적으로 재편했던 오스망의 작업은 만성적인 도시 폭동을 뿌리 뽑기 위한 정치적 기획의 일부였다. 이 교수는 이런 ‘오스망주의’가 오늘날 서울에서 재연되고 있으며, 광화문광장이야말로 ‘복제된 오스망주의’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단언한다. 흥미로운 점은 조례 제정을 통해 광화문광장에서의 정치행위를 봉쇄한 서울시의 ‘정치적 행위’가 사회적 논란을 촉발시킴으로써 광장 자체를 정치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교수는 말한다. “이로써 문제는 누가 광장을 점거하는가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결국 누구도 광장을 의지대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판타지를 위한 무대’에 불과했던 광장이, 그조차 봉쇄하려는 권력의 조급성 때문에 예기치 않은 새로운 정치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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