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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광화문 광장에 들어선 권력의 새 논리

등록 2009-12-17 19:25수정 2009-12-21 08:26

‘근대 민주주의의 공간’이라는 광장의 이상은, 광화문광장의 정치행위를 원천봉쇄한 서울시의 ‘삽질’에 의해 본래의 판타지적 성격을 폭로한다. 지난 8월 광화문광장 조례의 개정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을 경찰들이 에워싸고 있다.   이정아 기자 <A href="mailto:leej@hani.co.kr">leej@hani.co.kr</A>
‘근대 민주주의의 공간’이라는 광장의 이상은, 광화문광장의 정치행위를 원천봉쇄한 서울시의 ‘삽질’에 의해 본래의 판타지적 성격을 폭로한다. 지난 8월 광화문광장 조례의 개정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을 경찰들이 에워싸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하상복·이택광 교수 ‘광장’ 해부





문화 매개로 삼은 정치적 퍼포먼스
프랑스 ‘오스망주의’ 서울서 재현
정치행위 봉쇄가 외려 ‘광장 정치화’

아니 건드린 것만 못한 게 돼 버렸다. 논란은 3년 전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의 시작을 공식화하는 순간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심 개방공간의 정치적 휘발성을 모를 리 없는 관료들이 미국 대사관과 중앙 정부기관이 밀집한 수도의 한복판에 군중 집결이 가능한 광장을 열기로 했다면 위험의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확실한 유인 요인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 셈법은 외부에 알려져선 곤란한 것이었다. ‘권력의 공간’을 시민 품에 돌려준다는 명분의 순수성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광장의 독점을 비판하는 지식인들이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도 이 지점이다. 하상복 목포대 교수(정치학)와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문학)가 각각 계간 <기억과 전망>(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과 <미래와 희망>(미래&희망) 기고문에서 광화문광장으로 상징되는 현대 도심 광장의 권력 효과를 해부했다. 이른바 광장의 문화정치학이다.

하상복 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광화문광장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권력 논리다. 그가 볼 때 2000년대 만들어진 서울의 광장들은 노골적인 정치적 상징들로 넘쳐났던 과거의 광장들과 다르다. 서울광장과 청계광장, 광화문광장이 그런 경우인데, 이곳에는 정치권력의 힘과 의지를 감지할 만한 뚜렷한 상징물이 없다. 기껏 푸른 잔디밭이나 거대한 고둥 조형물처럼 ‘복원된 자연성’을 재현하거나, 세종대왕상처럼 ‘세종로’란 지명의 장소성을 확인시킬 뿐이다. 이런 점에서 왕궁의 전각을 허물어 총독부를 세웠던 식민권력이나 고층의 청사를 짓고 광화문을 복원해 근대화라는 치적을 민족주의적 상징과 결합시켜 과시했던 박정희 정부, 총독부 건물을 철거해 군사정권이 갖지 못한 역사적 정통성의 담지자임을 드러내려 한 김영삼 정부의 필사적 노력과는 사뭇 대조된다.


왼쪽부터 하상복·이택광 교수.
왼쪽부터 하상복·이택광 교수.
중요한 것은 가시적 구조물의 심층에서 관철되는 공간의 정치학이다. 그 실마리를 하 교수는 1980년대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주도했던 파리 대역사(大役事)에서 찾는다. 미테랑의 대역사를 통해 파리는 문화·예술·과학·학문의 중심지로 재탄생하는데, 여기엔 범속한 정치인이 아닌 교양 있는 지식인으로 자신을 현시하고, 집권 사회당을 구시대적 가치와 절연한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가시화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개입돼 있었다는 것이다. 하 교수가 광화문광장에서 발견하는 것도 “비정치적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스펙터클을 매개로 권력의 존재와 가치를 드러내는 고도의 정치 행위”다. 요컨대 서울을 브랜드 가치가 높은 상품으로 빚어내려는 문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광화문광장의 완성은 그것을 기획하고 추진한 주체의 위대함과 업적을 찬양하는 정치적 퍼포먼스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이택광 교수는 광화문광장에서 정치적 공론장의 기능을 제거하려는 서울시의 시도가 만들어낸 새로운 균열 지점에 눈길을 돌린다. 이 교수가 볼 때 ‘이념 속의 광장’은 자유·평등이 구현되는 근대 민주주의의 상징 공간이다. 하지만 완전한 참여의 자유가 보장되는 평등의 정치 공간은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광장은 민주주의 결핍이 만들어낸 ‘판타지’이기도 하다. 이 점은 근대의 광장이 민주주의의 공간적 구현과는 거리가 먼, 통치자의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한 스펙터클의 창출 과정에서 출현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이 교수의 참조 사례는 프랑스 제2제정기 오스망(1809~1891)에 의한 파리 개조다. 많은 도시사 연구자들이 지적하듯 도심의 미로를 일소하고 대로와 광장을 중심으로 파리의 공간을 혁명적으로 재편했던 오스망의 작업은 만성적인 도시 폭동을 뿌리 뽑기 위한 정치적 기획의 일부였다. 이 교수는 이런 ‘오스망주의’가 오늘날 서울에서 재연되고 있으며, 광화문광장이야말로 ‘복제된 오스망주의’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단언한다.

흥미로운 점은 조례 제정을 통해 광화문광장에서의 정치행위를 봉쇄한 서울시의 ‘정치적 행위’가 사회적 논란을 촉발시킴으로써 광장 자체를 정치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교수는 말한다. “이로써 문제는 누가 광장을 점거하는가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결국 누구도 광장을 의지대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판타지를 위한 무대’에 불과했던 광장이, 그조차 봉쇄하려는 권력의 조급성 때문에 예기치 않은 새로운 정치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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