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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경계지대 강북, 내장된 문화를 탐문하다

등록 2009-12-10 19:08

‘강남적인 것’과 구별되는 ‘강북적인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윤지관 교수는 서울의 중심과 바깥을 맺어주는 경계지대로서, 강북이 간직한 마을적·도시적 요소의 혼종성은 그 자체로 대도시의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시험할 수 있는 자원이라고 평가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강남적인 것’과 구별되는 ‘강북적인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윤지관 교수는 서울의 중심과 바깥을 맺어주는 경계지대로서, 강북이 간직한 마을적·도시적 요소의 혼종성은 그 자체로 대도시의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시험할 수 있는 자원이라고 평가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지역문화와 인문학…’ 심포지엄
자본의 논리에 완전 승복 않아
새로운 상상 펼칠 수 있는 토대




한강이 가른 것은 단지 서울이란 공간의 남과 북이 아니었다. 돌진적 근대화의 시간을 통과하며, 강은 우리의 의식 안에 중층화된 적대의 단층선을 그려놓았다. 강은 때로 정치적 구획선이자 문화의 경계선이었고, 드물게는 계급의 대치선으로 재현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대립적 공간 이미지는 다분히 ‘상상된’ 것이었다. 현실의 서울에서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보수성, 문화적 구별짓기 욕망 등으로 표상되는 ‘강남성’은, 규모와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강의 남·북쪽 모두에서 관철되는 경향적 특성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북적인 것’은 오직 ‘강남적이지 않은 것’이라는 부정적 방식으로 정의되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강한 공간적 균질화(강남화)의 압력에 맞서 강북이 지켜야 할 차이와 독특성이 무엇인지를 준별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11일 덕성여대 인문과학연구소가 ‘지역문화와 인문학-강북지역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교내 대강의동에서 개최하는 지역문화 심포지엄은 하나의 문화 공동체로서 강북이 갖는 지역적 특성을 규명하고, 그 안에서 대안적 도시문화의 가능성을 탐문하는 자리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기조 발제를 맡은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영문학·사진)가 주목하는 것은 강북이 갖는 ‘경계지대’로서의 특성이다. 이때의 ‘강북’은 한강 이북의 서울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에 대칭되는 지역 범주로 흔히 ‘강북3구’(강북·노원·도봉구)로 구획되곤 하는 서울의 동북지역에 한정된다.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영문학)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영문학)
윤 교수가 말하는 ‘경계지대로서의 강북’은 이곳이 대도시의 주변부이면서 남한의 최북단 접경지역과 맞닿아 있고(지리적 경계성), 서울에서는 상대적으로 저개발된 지역으로 대도시의 익명성과 농촌 공동체적 친밀성이 혼재하며(경제·문화적 경계성),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자연과 문화의 만남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곳(환경적 경계성)이란 점과 연관된다. 이런 세 차원의 경계성은 윤 교수가 볼 때 “대도시에 대한 상상을 새롭게 펼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요컨대 “서울의 중심과 바깥을 맺어주는 경계지대”로서 강북이 간직한 마을적·도시적 요소의 혼종성은 그 자체로 “대도시의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시험할 수 있는 자원”이라는 것이다.

이런 윤 교수의 인식은 중심·주변의 경계지대로서 ‘반주변부’가 갖는 문화적 활력에 주목하는 영문학자 프랑코 모레티의 논의와도 유사해 보인다. 모레티에 따르면 근대 이후 뛰어난 ‘세계문학적’ 성취의 대부분은 당대의 중심부가 아닌 핵심과 주변의 경계지역(반주변부)에서 이뤄졌는데, 18세기 독일(괴테)과 19세기의 아일랜드(제임스 조이스)·러시아(도스토옙스키), 20세기의 라틴아메리카(보르헤스·마르케스)가 그런 경우다.

윤 교수 역시 1970~80년대 강북을 배경으로 쓴 두 편의 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이창동, 1992)와 <장석조네 사람들>(김소진, 1995)에서 엿보이는 이 지역의 문화적 활력과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근대성에 대한 성찰’이다. 두 사람의 작품에서 드러나듯 “근대화와 함께 지역에서 새로운 유형의 삶이 형성되고 펼쳐진다는 것, 이 과정에서 근대인의 숙명인 정신적 갈등의 드라마를 연출하게 된다는 것은, 강북적 정체성에 대한 탐구가 빈부 격차와 도시문제 등 근대성의 모순들에 대한 성찰과 떨어질 수 없음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이런 ‘성찰 가능성’이야말로 윤 교수가 볼 때 강북과 강남의 ‘가치론적 대립’을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강남이 지구화하는 자본의 논리를 충실히 반영하는 서울의 한 구심점이라면, 강북은 이 논리에 전적으로 승복하지 않은 어떤 문화의 요소를 견지”하는데, 이는 다름 아닌 강북 문화에 내장된 성찰 가능성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다.


이날 행사에는 이 밖에도 주목할 만한 글이 적지 않다. 이은애 덕성여대 교수(국문학)는 강남·강북의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져 유통되며, 그것이 대중의 공간인식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지역신문에 나타난 공간 담론을 통해 규명하고, 정보연 도봉시민회 대표는 강북의 지역 정체성이 지역 주민운동에 어떤 형태로 구현돼 있는지를 분석한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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