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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베냐민의 아케이드 정치적 독법으로 안내

등록 2009-12-10 18:55

권용선 수유+너머 연구원
권용선 수유+너머 연구원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쓴 권용선 연구원
“‘환등상’ 안에서 다른 세계 가능성 찾아야”




완결되기를 거부했고, 완결되지 않아 전설이 된 책. 발터 베냐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이르는 말이다. 자본주의와 현대성에 대한 탁월한 분석으로 이름 높은 베냐민의 유작이지만, 완결된 책이라기보다 메모·단상의 형태로 남겨진 사유의 덩어리에 가까웠던 까닭에, 그 존재가 알려진 뒤에도 상당 기간 독자들의 접근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불친절한 책으로 남아 있었다.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그린비 펴냄)는 전설과 풍문에 주눅 든 독자들을 위해 권용선(사진) 수유+너머 연구원이 쓴, <아케이드 프로젝트>로 안내하는 인문학적 개념 지도다. 유념해야 할 사실은 지도는 지도이되 목적지에 이르는 최적·최단의 경로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권 연구원은 말한다. “베냐민의 ‘아케이드’로 가는 길은 무수히 많다. 나는 엔(n) 개의 길 가운데 내가 보았던 것 하나를 이야기할 뿐이다.”

이 필생의 역작을 통해 베냐민이 성취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자본주의 도시공간의 해부학이라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현대성의 자기파괴적 속성에 대한 비판, 나아가 탈자본주의적 출구를 탐색하는 혁명의 문화정치학이란 해석도 있다. 권 연구원은 “다 맞는 말”이라면서도 “다만 나는 정치적 방식의 독해를 선호한다”고 덧붙인다.

정치적 독법에서 핵심적인 개념이 ‘환등상’이란 우리말로 번역되곤 하는 ‘판타스마고리아’인데, 이 개념은 ‘잠-꿈-각성’이라는 상이하면서도 연속적인 계기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환상’이나 ‘환영’과는 구별된다. 요컨대 파리의 아케이드라는 19세기의 판타스마고리아에는 소비 자본주의의 현실을 은폐하는 기만의 요소(잠)뿐 아니라 동시대인들이 꿈꿨던 유토피아를 향한 소망(꿈)과, 기만의 현실을 차고 이륙하기 위한 도약(상기·각성)의 계기가 공존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비약의 가능성을 포착하는 일”이라고 권 연구원은 말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복원된 청계천을 보면서 대중의 저급성이나 권력과 자본의 토건적 상상력을 냉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판타스마고리아적 형식에 속박된 개인적·집합적 꿈(인간과 자연, 개인과 사회의 공존과 화해)의 기억을 상기시켜 변혁의 동력으로 삼는 것이다. 문제는 그 각성의 계기들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무의지적 기억’처럼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섬광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 찰나의 계기들을 어떻게 붙잡을 것인지가 관건인 셈인데, 이에 대한 베냐민의 처방을 권 연구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진보에 기대 과거를 낡은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을 찾듯 은폐된 과거의 흔적들을 섬광처럼 잡아채서 발굴하는 것, 다름 아닌 ‘기억’을 역사화시켜 전유하는 방식이다.”

글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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