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자기계발 열풍은 ‘인간형 구조조정’의 결과”

등록 2009-12-03 19:23

서동진 교수
서동진 교수
‘…자기계발의 의지’ 쓴 서동진 교수




그는 모든 종류의 근엄과 촌티를 혐오했다. 세상을 향한 그의 공격에는 사각(死角)이 없었다. 좌파 진영도 예외는 아니어서, 비합법 정치조직에 몸담았던 ‘권’ 출신이었음에도, 좌파의 정치적 엄숙주의와 삶의 보수주의는 그가 타격할 표적 목록의 상단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가 볼 때 좌파에 필요한 것은 치밀한 ‘분석의 과학’이나 정교한 ‘이행의 전략’이 아니었다. 그들이 결핍한 건 ‘자유의 언어’였다. 이런 그에게 세상은 ‘게릴라 지식인’이란 이름표를 선사했다. 세기가 바뀌었고, ‘게릴라’였던 그도 교수라는 ‘정규군’이 됐다.

미셸 푸코 ‘통치성’ 개념 활용해
‘신자유주의적 주체’ 형성 분석
“평생 자본 입맛따라 자기관리”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가 쓴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에는 지난 세월 ‘자유의 정치학’을 위해 감행했던 치열한 전투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1일 서울 서교동의 찻집에서 만난 그는 책을 두고 “자유주의와의 불장난을 그만두겠다는 선언”이라 했다. 대체 무슨 소린가. 그 사이 ‘원효대사 해골물’을 들이켜기라도 한 것일까.

“섹슈얼리티의 정치로 상징되는 급진적인 자유 담론을 이야기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극심한 외상을 입었어요. 내가 그동안 무슨 짓을 하며 돌아다닌 걸까, 자괴감을 떨쳐내기 어려웠습니다.”

그가 당시 맞닥뜨린 것은 견고한 현실이었다. 악인보다도 제 앞가림 못하는 사람을 더 불편해하고, 가난이나 차별을 비관해 죽은 사람을 보면서 그의 심약하고 무력한 태도를 탓하게 만드는 비정한 현실. 미셸 푸코와 니컬러스 로즈 등이 발전시킨 ‘통치성’ 개념을 탐침 삼아 달라진 현실의 심층으로 파고들었다. 그곳에서 서 교수는 변화한 현실에 조응하는 새로운 인간, ‘자기계발하는 주체’와 조우했다.

“경제적 현실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규정하고 재현하려는 다양한 담론들, 예컨대 지식기반경제, 지식정보사회 같은 담론들은 항상 그에 부합하는 새로운 주체성(인간형)을 요구합니다. 이 점은 구인광고의 변화 추이를 살피면 분명해집니다. 1970~80년대 광고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게 ‘용모단정하고 성실한’이란 문구입니다. 지금은 ‘창의적’ ‘도전적’ ‘재기발랄’ 같은 어휘들이 선호돼요. 묵묵히 지시를 따르는 순종적 존재가 아니라, 제 앞가림은 알아서 하고 시키지 않아도 제 할 일을 찾아 하는, 끝없이 스스로를 테스트하고 자기 능력을 극대화하려는 능동적 주체를 원한다는 겁니다. 이런 변화를 관통하는 열쇳말이 ‘자기계발’이지요.”

서 교수가 볼 때 최근의 자기계발 열풍의 중심에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빚어내려는 새로운 인간형, ‘자기계발하는 주체’가 자리잡고 있다. 다양한 자기계발서를 열정적으로 탐독하고, 직장과 국가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학습하면서 ‘스펙’을 쌓고 ‘경력’을 관리하는 사람들이다.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취업시장의 언어로 자신을 맞춤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스펙을 관리한다는 말로 표현되는데, 이건 굉장한 변화입니다. 자신을 관리·경영하는 방식, 곧 권력과 자본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사고·신체·행실을 변화시키는 것이죠. 이런 과정이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게 ‘평생학습사회’입니다.”

서 교수는 최근 출판시장의 트렌드가 된 ‘심리학’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쏟아냈다. 범박하고 노골적인 자기계발서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세련된 포장을 둘렀을 뿐 본질에선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새로운 자본주의의 특징은 자신에 필요한 주체를 만들어내기 위해 과학적 지식, 특히 경영학과 심리학을 폭넓게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자신을 책임지고 관리하고 향상시키기 위해선 자기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인데, 각종 심리측정 도구들이 이걸 제공하는 것이죠. 과거에는 일생에 한 번 국가가 주관하는 적성·지능검사를 받던 것에 그쳤던 심리측정이 이제는 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연중무휴로 이뤄지고 있어요.”

애초 서 교수가 책을 통해 드러내려 했던 사실은 분명했다. 한국 자본주의가 지난 20년간 추진해온 장기적 구조조정은 동시에 ‘주체성의 구조조정’ 과정이었으며,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자기계발하는 주체’라는 것. 하지만 종착지를 목전에 둔 서 교수는 머뭇거린다. 자신이 비판했던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형성 논리(자기계발의 의지)가 실은 기존의 규율사회를 비판하며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갈망하던 ‘자유로운 주체’의 자기형성 논리(자유에의 의지)와 중첩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서다. 그렇다면 자기계발을 강요받는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는 자유의 의지조차 포기해야 하는가. 서 교수는 조심스럽다.

“자유란 자명하고 선험적인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도구화되고 조작됨으로써 사회적 삶을 관리하고 지배하는 데 사용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유를 통해 지배의 규칙과 의무를 의문시하고 현실에 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질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자유라는 허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대안이라고 조급히 결론내려선 안 된다.”

글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1.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구준엽 아내 서희원 숨져…향년 48 2.

구준엽 아내 서희원 숨져…향년 48

인상파 대가 오지호 명작 ‘사과밭’과 ‘남향집’의 엇갈린 뒤안길 3.

인상파 대가 오지호 명작 ‘사과밭’과 ‘남향집’의 엇갈린 뒤안길

“알고 보면 반할 걸”…민화와 K팝아트의 만남 4.

“알고 보면 반할 걸”…민화와 K팝아트의 만남

신학철 화백 “백기완 선생, 내면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분” 5.

신학철 화백 “백기완 선생, 내면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분”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