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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감옥 같은 세상…‘잡범 청춘’ 수감기

등록 2009-11-26 22:30수정 2009-11-26 22:35

〈어느 잡범에 대한 수사 보고〉
〈어느 잡범에 대한 수사 보고〉
유용주 소설 ‘어느 잡범에 대한 수사 보고’
‘무전취식죄’로 시국 사범과 유치장 동기
교도소서 문학 꿈 붙잡은 자전 경험 보태




2002년 <한겨레>에 연재되었던 유용주(50)씨의 <어느 잡범에 대한 수사 보고>(한겨레출판)가 7년 만에 책으로 묶여 나왔다. 유씨의 첫 소설 <마린을 찾아서>에 이어지는 자전 소설로, 20대와 30대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담았다.

소설은 일종의 액자 구조로 되어 있다. 술에 취해 지나던 행인을 구타하고 출동한 경찰차와 파출소 기물을 파손한 혐의로 유치장에 들어와 있는 주인공 ‘김호식’이 유치장 근무자 정 경장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그 이야기 속에서 87년 여름의 김호식은 길에서 주운 남의 카드로 비싼 술을 사 먹다가 무전취식으로 걸려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된다. 술에 취한 채 잠들었다가 깨어난 그의 눈에 비친 유치장의 광경은 어떠했던가.

“스무 명이 훨씬 넘을 것 같은 대학생들이, 대나무 같은 푸른 학생들이 맨발에 질서정연하게 서서 애국가를 사 절까지 부르더군요. 장엄했습니다. (…)애국가가 끝나자 왼손은 허리에 반동 준비 자세를 하고 오른손은 불끈 쥐어 전방을 찌르면서 구호를 외치는데 대단합디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미국반대!’의 고함 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합디다.”

그렇다. 때는 87년 6월이었고, 서울 전역의 경찰서 유치장을 데모하다 붙잡혀 온 학생들이 채우던 무렵이었다. 유치장 근무자가 김호식에게 “당신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학생들도 나라를 위해, 민주화를 위해 밤낮없이 몸을 던지는 시대에, 부끄럽지도 않소?”라고 훈계하던 시절, 먼저 나가는 그를 향해 학생들이 쭉 서서 박수를 쳐 주며 ‘호헌철폐, 무전취식! 독재타도, 무전취식!’ 구호를 외쳐 주던 시절이었다.

유용주(50)
유용주(50)
무전취식 이야기로 문을 연 ‘고해성사’는 장을 바꾸어서 이어진다. 이번에는 시간을 더 거슬러올라가 김호식이 양평에서 군 생활을 하던 80년대 초. 그가 배치된 부대는 대대장이 “그 유명한 광주 투입 사단”이라 자랑하던 20사단 신병교육대였다. 산과 물과 안개와 별빛이 어우러진 양평의 수려한 자연은 문학 지망생인 주인공의 시심을 자극하는데, 군대 특유의 폭력과 부조리는 젊은 피를 끓게 만든다. 게다가 대학에 다니다 온 입대 동기를 통해 80년 5월 광주의 진실에 눈을 뜨게 되면서 그의 분노와 증오는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르게 된다.

“내 안에서 무럭무럭 크고 있는 격렬한 분노와 증오는 어떤 자식을 낳을까.”

안타깝게도 그 분노와 증오는 엉뚱한 방향으로 물꼬를 튼다. 그가 배속된 취사장 사병들과 하사관후보생들 사이의 패싸움에 연루되어 그는 남한산성 육군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곳에는 햇빛도 수직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사선으로 들어온다. 철창에 부딪혀 들어온다. 관절이 부러져 들어온다. 눈보라도 얻어터진 채 들어온다. 멍들어 들어온다. 어둠만이 물샐틈없이 꽉 차 있다.”


소설 후반부는 군대와 감옥의 나쁜 점만을 모아 놓은 듯한 육군 교도소에서 주인공이 겪는 모멸과 폭행, 그럼에도 끝내 놓지 않는 문학을 향한 꿈에 할애된다. “가장 밑바닥인 이곳에서, 짐승 취급을 받는 이곳에서 살아남아, 이 바닥을 증거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그의 모습은 6·25의 참극을 증언에의 욕구로써 버텨 낸 박완서씨의 경우를 떠오르게도 한다. <어느 잡범에 대한 수사 보고>로써 작가는 그 다짐을 지킨 셈이다.

정 경장의 말마따나 “어디를 둘러봐도 흠 하나 잡을 거 없는 완벽한 잡범”인 주인공의 눈에 “세상은 어디를 가나,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한 커다란 감옥”으로 인식된다. 유치장과 군대, 그리고 군 감옥에 이르기까지 시종 갇힌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에게 왕성한 성욕과 사나운 섹스는, 문학을 제한다면, 거의 유일하게 허용된 탈출구였을 것이다. 과도해 보일 정도의 성적 묘사는 갇힌 청춘의 생명력에 대한 반증으로 이해할 만하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정용일 <한겨레21>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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