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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11월 21일 잠깐독서

등록 2009-11-20 19:33수정 2009-11-20 19:34

〈고양이의 이중생활〉
〈고양이의 이중생활〉




‘키보드 혁명가’들의 거사 모의

〈고양이의 이중생활〉

“도대체 그 깡통은 어디에 쓸 거니?”

“폭탄을 만드는 중이에요.”

“폭탄이라고! 무슨 농담을 진담처럼 하네.”

“어, 진담인데.”

민우는 반년 전 회원으로 가입한 인터넷 카페의 카페지기에게 ‘폭탄 테러’ 지령을 받았다. “11월7일 러시아혁명 기념일 거사를 위해 폭탄을 만들어라.” 인터넷 카페 ‘PtRe’(Proletariat Revolution)가 내건 기치는 거창하게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다. 만년 고시생에서 백수로 전락한 김철수, 대학 병원 교수의 아들인 휴학생 권민우, 카페지기 최지욱의 메신저 역할을 수행하는 7살배기 여자 아이 딸기. 카페 활동에는 큰 관심이 없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40대 강 주임과 명문대 경영학과에 재학중인 ‘세련된 속물’ 안정현.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하는 회원이라고는 고작 5명뿐이다.


소설 <고양이의 이중생활>은 ‘역사의 종언’이란 큰 주제의 변주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에게 역사의 종언 이후를 살아가는 자들에 걸맞게 적당히 뒤틀리고 전복적인 색채를 부여했다. 소설은 아주 익숙한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한 순간 생경한 끝을 향해 달린다. 생경하다고 생각한 순간 예전에 만난 이야기를 다시 만난다.

등장인물들은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혁명을 꿈꾸며, 실패한 후에도 때때로 혁명의 잔상을 떠올리는 ‘우리’와 같은 존재를 암시한다. ‘키보드 혁명가’들의 자판 놀음으로 변한 혁명의 문구는 고양이와 자명종이 일으킨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큰 전환을 맞는다. 11월7일, ‘폭탄 테러’는 과연 성공했을까. 김연경 지음/민음사·1만1000원.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밀려난 진보…출구 없는 교육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몇 해 전 고교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있었다. 작은 도시였다. 가해자는 구속됐다. 그의 친구는 졸업 후 룸살롱 웨이터로 떠돌다 공장 노동자가 됐다. 졸업생 중에는 특수부대를 지원한 아이, 포클레인 기사가 된 아이도 있다. 도시로 흘러가 철거현장의 용역직원이 된 아이도, 철거민이 돼 용역과 맞설 졸업생도 있을지 모른다.

고향인 소도시로 돌아간 한 교사는 경쟁사회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아이들과 만난다. 그리고 교육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서울에서 주식과 아파트 값이 걱정인 부모들이 국민을 종업원으로 보는 ‘시이오 대통령’을 뽑는 사이, 교육정책은 상위층과 차상위계층의 투쟁과 타협으로 일그러져 있다. 중산층은 학벌제도의 개선을 요구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개혁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상류층과의 지위 경쟁이 좀더 공정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교육·노동운동조직이나 시민단체의 주장도 그 범위를 넘지 않는다.

그 교사는 말한다. 진보란 “무언가를 딛고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힘없고 약한 것들을 보듬어주는 손길이며, 자기희생의 고통 그 자체”다. 경쟁체제의 외진 변두리 시골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뭘까. 딱 부러진 대안은 없다. 끝 모를 욕망에 영혼을 판 사회체제에 신나게 저항하자. 부당한 일에는 끼지도 말고, 물러서지도 말자. 졸업장을 쥐여 주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잘 가라, 아이들아. 힘없는 자들을 망루 꼭대기로 몰아넣고 불태워 죽이는 세상 앞에서 당당하자. 사람답게 살자. 영혼 없는 사회에서 희망의 숨결은 가냘프지만 그만큼 숨가쁘게 벅차다. 이계삼 지음/녹색평론사·13000원.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서양사 꿰뚫는 정밀 ‘문학 지도’

〈문학의 광장 시리즈〉
〈문학의 광장 시리즈〉
〈문학의 광장 시리즈〉

700여명의 문학전문가들이 모여 4년여의 준비 기간을 통해서 세상에 내보인 문학해설서 시리즈. 그 규모나 치밀함에 있어서 꼼꼼한 일본인들이 아니라면 해낼 수 없었을 듯한 이 대형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거창하거나 장대한 느낌보다는 오히려 다정다감하다. 일단 다양한 비주얼 자료와 꼼꼼한 연대기, 역사적 배경과 사료의 제시도 부지런하다. 총 20권으로 구성된 ‘문학의 광장’ 시리즈 가운데 1차분으로 <문학의 탄생-고대 그리스 로마 문학> <성서 문학과 영웅 서사시-예수, 베오울프, 아서왕> <르네상스 문학의 세 얼굴-연애, 고백, 풍자>가 출간됐다. 성서를 서양문학 흐름의 중요한 텍스트로 접근하는 시도가 신선하다. 구약은 ‘이야기의 보물창고’로 신약은 ‘사람에 대한 사람의 기록’으로 요약하면서 그레고리안 성가의 문학적 가치나 헬레니즘 시대의 수사학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의 가지가 뻗어나가는 방식이나 깊이 또한 예사롭지 않다.

3권 르네상스 편에서도 몽테뉴나 데카르트, 마키아벨리처럼 주로 문학 밖의 울타리에서 언급되던 인물들과 그들의 사상을 문학 텍스트 안으로 끌어들여 르네상스의 인간중심주의가 어떻게 자기고백의 문학을 태어나게 했는지 분석한다. 따라서 이 시리즈는 문학에 대한 해설에 머물지 않고 전반적인 인문학적 교양서로서도 충분히 그 소임을 다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시오노 나나미 등의 작가들도 대거 필자로 참여했다. 시오노 나나미 외 지음·이목 외 옮김/웅진지식하우스·각 권 3만원.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불확실성의 시대’ 밝혀주는 경영학

〈이원재의 5분 경영학〉
〈이원재의 5분 경영학〉
〈이원재의 5분 경영학〉

대리운전과 택시의 상관관계, 번화가 설렁탕집의 할인공세와 변두리 설렁탕집의 정가 정책, 프로야구 구단의 신인선수 지명 이유, 샐러드 드레싱 회사 사장이 된 폴 뉴먼 이야기, 감세정책에 반대하는 미국 부자들의 이상한 행동, 블루클럽에서 머리를 감겨주지 않는 까닭…. <이원재의 5분 경영학>은 이런 우리 주변의 현상들을 매개로 중요한 경영학 개념들을 짧은 글 속에 녹여낸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이 책에서 다루는 개념들은 대체재, 시장획정, 기회비용, 독점력, 시장세분화, 선점전략, 사회적기업 등 하나같이 쉽지 않은 것들이다. 하지만 <… 5분 경영학>은 이들이 우리 주변 현장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어느새 친근한 개념으로 바꿔버린다. 가량 대리운전과 택시는, 한쪽에 대한 수요가 늘면 다른 쪽에 대한 수요가 적어지는 ‘대체재’다. 이 소장은 이 개념을 최근 값이 크게 내린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 집에 갈 때, 길거리에 쭉 늘어선 빈 택시들을 봤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깊게 인식시킨다.

이 소장이 이렇게 주변 현상들을 경영학적 눈으로 보면서 얻고자 하는 것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다. 이 소장은 인생이 ‘내 위치는 어디인지’, ‘얼마를 지불하고 청구할지’, ‘누구를 설득하고 누구에게 배워야 할지’ 등등의 질문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경영학이라는 창을 통해 이런 질문들을 올바로 던질 능력을 쌓아갈 때 “불확실성의 시대”를 헤쳐갈 지혜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통해 ‘벌어들이는 것’이 돈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강조한다. /한겨레출판·1만3000원.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부조리 한국스포츠 ‘맛 좀 봐라’

〈어퍼컷〉
〈어퍼컷〉
〈어퍼컷〉

박지성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출전한 다음날이면, 한국 언론들은 난리가 난다. 65분 뛰고 공격포인트 없이 교체됐는데도, ‘산소탱크’ 최고 활약 등 보도가 이어진다. 완전 ‘지성어천가’다. 웨인 루니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즐비한데도, 기사 내용은 박지성이 제일 잘했다는 뉘앙스다.

지은이는 이런 행태를 ‘언론의 박지성 장사, 그 불편한 진실’이라는 화두로 통렬하게 질타한다. 가령 ‘산소탱크’란 별명에 대해서도 “선수의 특별한 재능, 기술, 경기력과 관련된 애칭이 많을 텐데 왜 하필이면 산소통일까” 의문을 제기한다.

<어퍼컷>은 바로 그런 내용을 담은 한국 스포츠 비평서다. ‘신성불가침의 한국 스포츠에 날리는 한방’이라는 부제는 독자의 눈길을 확실히 끌어당긴다. “나 자신 어릴 적 운동선수였고, 지금은 스포츠를 전공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눈이 삔 건지 안경을 뒤집어 쓴 건지 남들이 잘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자꾸 보이고 남들이 하지 않는 질문을 하게 됐다. 어떤 이들은 왜 자꾸 한국 스포츠의 부조리를, 폭력을, 비이성을 들춰내냐고 한다. …”

평창이 겨울올림픽 유치 ‘삼수’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파고든다. 평창과 에스비에스(SBS), 태영이 관계가 있다는 내용이다. ‘올림픽은 개고생이다’, ‘박태환과 김연아, 민족의 원투펀치’, ‘한국스포츠 최고의 명곡, 금메달 타령’, ‘촛불정국, 보이지 않는 스포츠 스타들’ …. 제목만 봐도 안 읽고는 배길 수 없는 내용들이 책 곳곳에 담겨 있다. 정희준 지음/미지북스·1만3000원.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디지털시대 ‘공짜의 경제학’

〈프리; Free〉
〈프리; Free〉
〈프리; Free〉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빌 게이츠는 ‘불법 복제가 계속된다면 새로운 소프트웨어 개발을 할 수 없어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불법 복제를 완전히 막을 순 없다는 걸 안 마이크로소프트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만 불법 복제를 통제했다. 그 결과 불법 복제가 활발히 일어나는 개발도상국, 특히 중국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의존율이 높아졌고 마이크로소프트는 불법 복제를 견딘 끝에 방대한 유료 시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공짜로 수익이 생긴 셈이다. ‘0과 1’이 만들어내는 무한의 세상, 인터넷은 공짜 진열공간을 만들어냈다. 이 무한하면서도 무료로 제공되는 진열공간에선 물질세계의 ‘원자경제’와 다른 디지털세계의 ‘비트경제’가 형성된다. 디지털 배급 시스템을 이용하는 데는 컴퓨터만 있다면 0에 가까운 비용이 든다. 그래서 비트경제는 진정한 공짜를 제공할 수 있다. 그렇다고 수익이 0이 되는 건 아니다. 공짜 덕분에 도리어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런 변화 덕에 저자는 ‘인간의 행동과 경제적 인센티브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의 일부를 재고해야 할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새로운 공짜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내일의 시장을 지배하고 오늘의 시장을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 내다본다.

고정관념을 벗어던지고 공짜개념을 받아들여라. <프리; Free>는 단순히 공짜로 수익을 낼 수 있었던 사례나 방법만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이 공짜 경제를 받치고 있는 경제학, 사회심리학적 기반까지도 파헤친다. 크리스 앤더슨 지음·정준희 옮김/랜덤하우스·1만5800원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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