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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민중 어르고 달랜 ‘뽕짝 80년사’

등록 2009-11-20 18:53수정 2009-11-20 18:53

〈트로트의 정치학〉
〈트로트의 정치학〉
일제문화 잔재서 이젠 전통가요로
한국인 대표적 소통수단 자리매김




〈트로트의 정치학〉
손민정 지음/음악세계·1만6000원

트로트. 2박 계열의 단순한 리듬과 ‘라-시-도-미-파’로 구성된 단음계, 독특한 꺾기 창법이 두드러진 한국 대중음악의 한 갈래다. 기원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일본 엔카에 뿌리를 둔 ‘왜색 음악’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서양 폭스트로트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으로 발전해온 한국의 전통가요 장르라는 의견도 있다. 그래서 일부에선 ‘전통가요’라 부르기도 하는데, 보통은 ‘뽕짝’이란 속된 이름이 통용된다. ‘후지고 촌티 난다’는 뜻의 ‘뽕필’은 그 파생어다.

<트로트의 정치학>은 5년 전 글쓴이가 미국 텍사스주립대에 제출한 박사논문을 손질한 책이다. ‘정치학’이란 제목에 지나친 기대를 거는 건 좋지 않다. 트로트라는 대중음악 장르의 형성과 변천 과정을 생산자-소비자의 입을 빌려 기술할 뿐, 그 심층을 복류하는 권력관계의 분석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한 탓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트로트의 문화사’다.

트로트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선 몇 차례 논쟁이 있었다. 가장 유명한 게 1980년대 중반의 ‘뽕짝논쟁’이다. 뚜렷한 승자 없이 마무리된 논쟁이었지만,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민족주의가 압도하는 전반적 분위기 속에서 트로트에는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일제강점기의 문화적 잔재”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글쓴이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싹튼다. “이 논쟁에서는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다. 바로 이 음악을 만들고 사랑해온 사람과 그들의 몸부림이다. 한국인은 트로트를 통해 세상과 역사에 맞서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타협하며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를 찾아나갔다.”

1960년대 말 한국 트로트의 라이벌 나훈아(왼쪽)와 남진, 이미자(가운데).
1960년대 말 한국 트로트의 라이벌 나훈아(왼쪽)와 남진, 이미자(가운데).


1920년대, 처음 트로트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그저 ‘유행가’라고 불렀다. 아직 대중음악 초창기라 다양한 장르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특별히 이름을 지어 부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 시기 활동했던 가수들이 고복수·김복희·선우일선·왕수복·이난영·전옥·채규엽 등인데, 여성들이 주로 기생이나 배우, 지방극단 출신이었던 반면, 남성들은 유학을 다녀오거나 클래식을 전공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라디오 보급률이 높지 않아 방송사의 힘이 세지 않았던 탓에 당시 음악산업을 좌우하던 것은 콜럼비아, 빅터, 태평 등 5대 레코드 회사였는데, 대부분의 노래들은 레코드사에 소속된 문예부장들이 만들었다. 평소 유행가의 유해성을 역설했던 홍난파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트로트의 성숙기였던 1950~60년대는 전쟁과 혁명, 군사반란의 시대였다. 트로트는 전쟁의 고통을 어루만졌고, 때로는 권력과 야합하기도, 때로는 저항하는 민중 편에서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면서 어두운 현대사의 터널을 통과했다. 이 시기는 이미자와 배호, 남진, 나훈아의 시대이기도 했다. 미국 팝 음악이 밀려들면서 젊은이들을 매료시켰고, 트로트는 끊임없는 왜색 시비에 시달리면서 팝의 스타일을 절충한 ‘뉴트로트’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위축돼 있던 트로트는 1980년대 든든한 원군을 만나는데, 디스코였다. 디스코는 트로트를, 들으며 즐기는 음악에서 춤을 위한 배경음악으로 진화시켰다.

“디스코는 트로트에게도 해방의 기회를 주었다. 리드하는 남자의 역할 분담이 확실한 사교춤에서 해방돼 남녀 모두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춤을 췄다. 소위 막춤이 가능해진 것이다. 트로트는 비애의 노래에서 희열의 댄스로 변했다.”

이 시절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를 점령한 것은 트로트 메들리였다. 봄가을의 고속도로는 무도장이 된 관광버스들이 질주했다. 80년대 중반 3저호황이 가져다준 상대적 풍요의 선물이었다. 디스코를 만난 트로트는 이후 카페 트로트 메들리, 댄스 트로트 메들리, 테크노 트로트 메들리로 나날이 진화했고, 이런 장르적 발전은 2000년대 트로트가 ‘왜색’의 굴레를 벗고 ‘전통가요’의 지위를 획득하는 데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트로트는 이제 어린이집 재롱잔치에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선거 로고송에 이르기까지 가장 직접적인 한국인의 소통방법으로 자리잡았다. 십대 아이돌 그룹들마저 댄스 트로트의 대열에 합세한 오늘의 상황을 두고 글쓴이가 내리는 진단은 이렇다.

“이제 누구도 트로트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형화돼 전해지는 ‘전통’이 아닌, 현재적 의미에 맞게 ‘함께 만들어가는 전통’으로서 트로트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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